발레단 부단장 "견습생이 이처럼 잘하는 건 처음 봐" 극찬
  • 한국인 발레리노 김기민(20)씨가 230년 전통의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현재 마린스키 발레단의 견습생 자격으로 정식 입단을 앞두고 있는 김씨는 6일 저녁(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된 '해적'에서 주인공 '알리'역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선보임으로써 관객과 발레단원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 영국의 낭만 시인 바이런의 서사시를 원작으로 한 '해적'은 터키 점령하의 그리스에서 벌어지는 의로운 해적들과 그리스 소녀들의 사랑과 모험을 다룬 작품이다. 아돌프 아당이 작곡하고 러시아의 천재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 등이 안무했다. 김씨는 해적 두목인 '콘라드'의 충복 '알리' 역을 맡아 마린스키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인 빅토리야 테료슈키나와 호흡을 맞췄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세르게이 브로스쿠랴코프 부단장은 공연 후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견습생이 마린스키 극장의 주역을 맡은 것도 극장 역사상 처음이며, 견습생이 이 정도로 연기를 잘 하는 경우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처음 본다"고 극찬했다. 그는 "객석을 가득 메운 1천500여명 관객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고 커튼콜만 4~5번이 이어졌다"고 열광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극장 측이 기민에게 주역을 맡긴 것부터가 그의 능력을 높이 인정한 증거"라며 "병역 문제 등만 해결되면 발레단에 정식 입단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재학 중이던 지난해 6월 치러진 마린스키 발레단 오디션에서 정식 입단에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한국에서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일단 견습생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극장 측은 김씨가 이 문제만 해결하면 언제든 정식 단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고전 발레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무용수가 입단한 건 1995년부터 15년간 이 발레단의 단원으로 활동한 뒤 2010년 은퇴한 한국인 발레리나 유지연씨가 유일하다.

    김씨도 공연 후 통화에서 "테크닉 못지않게 표현력을 중시하는 러시아 발레의 특성을 잘 살리려고 노력했다"며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뜨거워 아주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 어릴 때부터 '발레 신동'으로 불린 김기민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영재로 한예종 무용원에 입학했으며 2009년 모스크바콩쿠르 주니어부문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2010년 미국 IBC(잭슨콩쿠르)에서 주니어 남자부문 은상을, 바르나 콩쿠르 주니어부문에서 금상을 받는 등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2009년 12월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10대로는 처음으로 주역 지그프리드 왕자 역을 맡아 국내 직업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 주역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앞으로 마린스키 발레단에 정식 입단해 장기적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힌 김씨는 그러나 우선 군복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예체능계 특기자에게 주어지는 병역 면제 혜택은 발레의 경우 주요 국제 콩쿠르에서 1, 2위 이상 입상 성적을 거둬야 하며 그것도 주니어 대회가 아닌 성인 대회에서 입상해야 하기 때문에 주니어 부문 수상 성적만 가진 김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김씨는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릴 국제 콩쿠르 등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둬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마린스키 극장에 정식 입단한 뒤 발레에 몰두하고 싶다"고 새해 소망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