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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재편은 체통 세우기부터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졌다. 한나라당이 적당히 미봉책으로 넘어갈 수 없는 국면이 온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는 신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한나라당 친이계(親李系) 일부는 그들대로 만나고 있다. 일부 원외(院外) 단체들은 비박(非朴) 냄새가 나는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래저래 보수라 할지 우파라 할지 하는 쪽에 유동성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아직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앞으로 보수 쪽은 박근혜 중심이냐, 비박(非朴) 연대냐로 일단 나뉠 것 같다. 필자는 이런 다툼에는 글로든 실천으로든 일체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노선 문제에는 개인적인 의견을 밝힐 것이다. 한국 보수진영이 어떤 노선을 책정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정치 그룹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명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선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씨 그룹이든 비박 그룹이든 그들이 좌파가 아니라고 하는 한에는 비좌파적 정체성의 핵심사항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한 마디로, 비굴하게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 좌파에 겁먹고 아첨하는 비좌파, 좌파 뒤만 졸졸 따라가는 비좌파, 좌파 벤치 마킹만 하는 비좌파는 비좌파가 아니다. 선수를 쳐서 보다 합리적인 정책을 먼저 내놓지 못하고 밤낮 뒷북만 쳐가지고서야 2중대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젊은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은 좋으나 젊은이들한테 공포심을 가지고 아첨하는 것은 리더의 자격이 없다. 대중의 추세를 파악하는 것은 좋으나 대중에 투항하는 것은 리더의 자격이 없다. 당당히 설득하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리더이지 쩔쩔 매며 허겁지겁 대령하는 것은 리더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래서 망했다. 만만히 보인 것이다. 집에서도 애비가 만만히 보이면 그 집구석은 ‘망쪼’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보수의 활로를 찾으려면 이러고 저래야 한다는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아주 현학적이고 학문적이고 복잡하게.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말할 게 아니다. 핵심은 간단하다. 리더십이다. 애비가 애비 자리에 떡하니 서고, 선생이 선생 자리에 당당히 서고, 지도층이 지도층 자리에 권위 있게 서는 것, 이게 리더십이다.
리더십의 요체는 체통이다. 대경대도(大徑大道)를 걸으며 자존을 잃지 않는 것.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걸 못해서 얕잡아 보였다. 얕잡아 보여 가지고서야 어떻게 집권세력 노릇을 할 수 있는가?
보수의 재편성? 재편성 백 번 해도 이 핵심적인 사항을 깨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유식한 사람들 쌔고 쌔서 정책 걱정은 과히 할 것 없다. 문제는 자존이다. 자존을 부린다고 쉬 승복할 요즘 대중은 물론 아니다. 지하철에서 젊은이가 늙은이를 패는 요즘 세상이다.
그래서 자존을 지키려면 법도와 기강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권위주의 시절의 방식은 물론 안 된다. 그러나 민주시대 나름의 칼 같은 규칙은 서야 한다. 보수는 민주시대 나름의 공공규범을 관철 시키겠다는 투철한 에토스를 가져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 의지가 없어서 망했다. 겁쟁이와 비겁한 자와 자존 없는 자들의 ‘망쪼’였다.
보수 그룹들은 신장개업이나 재편을 하기 전에, 화려한 정책을 말하기 전에, 먼저 리더란 무엇이냐, 리더십이란 무엇이냐부터 되새겨야 한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