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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강천보 공사 시작 직후 왼쪽 남한강가에 있던 무어 장군 추모비. ⓒ 이오봉 기자
4대강살리기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사업장 주변의 유적지들이 새롭게 밝혀지면서 복원되고 있다. 새롭게 멋지게 꾸며진 주변의 수변 공간과 함께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다.
한강 강촌보 강 언덕에는 한국전에서 죽은 美 육군 9군단장 브라이언트 에드워드 무어 (Bryant E. Moore, 1894-1951) 소장의 빛바랜 추모비가 전해 오고 있었다.
美 육군사관학교장을 지내다 1951년 2월 美 육군 제9군단장으로 취임한 무어 소장은 중공군의 반격 저지하기 위해 취임 3주일만인 2월 24일 헬기를 타고 여주 남한강 도하적전을 지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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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천보 공사가 끝나고 제자리에 돌아 온 무어 장군 추모비. 美 8군 공병 장교와 한미연합사 장교들이 찾아와 돌아보고 있다. ⓒ 이오봉 기자
불행하게도 탑승했던 헬기가 지금의 강천보 통합관리센터 건너편인 경기도 강천면 가야리 강 언덕에 세워졌던 고압선에 걸려 강바닥에 추락했다. 무어 소장은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56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곳에서 전사를 한 무어 장군의 추모비는 강천보 건설 공사 중 잠시 시공사인 현대건설 현장사무소 앞마당으로 옮겨졌다가 공사가 끝나면서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강천보를 지나는 자전거길가 언덕에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거나 산책을 나온 방문객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美 8군 공병단이 당시에 세운 흰 대리석의 무어 소장의 추모비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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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어 소장 추모비. 강천보의 물소리와 함께 무어 장군을 추모하는 발길은 끊이질 않을 것이다. ⓒ 이오봉 기자
한국전에서는 5만4000명의 미군 전사자와 10만명의 미군 부상자가 우리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강천보 추모비의 주인공인 무어 소장은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2월 23일 지금의 서울시 도봉구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美 육군 8군단장이였던 워커 중장에 이어 두 번째로 전사한 고위급 美 육군 장성이다.
우리는 이들의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조상들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고 했다. 우리가 어찌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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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수자원공사 강천보건설단의 윤석영 차장이 한국군과 미군 관계자들과 함께 향후 무어 장군 추모비 보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 이오봉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