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과세·서민증세 논란 상속세 완화 시사… "과도한 할증과세 국민공감 필요"삼성가 상속세 내려고 지분 매각 등 稅폭탄에 기업 경영권 불안·해외 이탈 가속英정부도 상속세 폐지 검토… 韓 실질 최고세율 60%, 野 '부의 대물림' 프레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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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이중과세와 서민 증세 논란이 일고 있는 상속세 손질을 시사해 정부의 향후 대응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하향 조정되는 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4번째 민생 토론회에서 "상속세가 과도한 할증 과세라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소액 주주는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보지만, 대주주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할증세까지 있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면서 "웬만한 상장 기업들이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독일과 같은 강소기업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우리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국민께서 인식하고 공유해야 과도한 세제를 개혁해 나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앞으로 국민 여론 수렴을 거쳐 상속세를 완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명목 최고 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여기에 대기업 최대 주주 할증과세까지 적용하면 최고세율이 60%까지 치솟는다. 사실상 1위에 해당한다. 지나친 상속세 폭탄은 기업경영권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기업의 해외 이탈을 가속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삼성 일가의 경우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후 12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보유 주식을 팔거나 막대한 이자를 물어가며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1일에는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삼성전자 지분의 0.5%쯤에 해당하는 보통주 2982만9183주(2조1900억여 원)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 세 모녀의 블록딜 결정 배경에는 상속세 납부가 있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고 김정주 넥슨그룹 회장의 유족들은 상속세를 내려고 물려받은 넥슨 지주회사 NXC의 지분을 물납하면서 이슈가 됐다. 회사 지분을 물납 받은 기획재정부가 별안간 게임회사의 2대 주주가 되는 촌극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우리나라 상속세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경영권 상속이 어려울 지경"이라며 "상속세율을 대폭 인하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세계적으로 상속세는 폐지하거나 최고세율을 내리는 추세다. 리시 수낵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 정부는 올해 총선을 앞두고 감세 정책을 검토하는 가운데 상속세 폐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낵 총리로선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인 노동당에 지지율이 뒤지는 상황을 역전시킬 돌파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영국 정부가 상속세 폐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상속세가 이중과세라는 지적과 불만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상속세율은 우리보다 낮은 40%다. 면세 한도인 32만5000파운드(5억3600만 원쯤)를 넘어서면 부과한다. 주택의 경우 상속세 면세 한도는 50만 파운드(8억2000만 원쯤)까지 올라간다. 영국에서 상속세를 내는 가구는 전체의 4%쯤이다. 영국 정부는 상속세 수입으로 연간 70억 파운드(1조8000억 원쯤)를 거둬들인다.

    영국에선 지난해 9월부터 상속세 폐지 여론이 형성돼 왔다.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선 상속세가 이미 소득세를 부과한 자산에 대해 세금을 또 매기므로 비도덕적이고 이중과세에 해당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10월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유권자 54%가 현 상속세 제도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답했다.
  • ▲ 발언하는 영국 수낵 총리.ⓒ연합뉴스
    ▲ 발언하는 영국 수낵 총리.ⓒ연합뉴스
    우리나라는 '부의 세습'이라는 야당의 프레임에 막혀 상속세 개편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우리나라의 과세포착률(정부가 세금 납부 대상의 소득을 파악하는 비율)이 50%로 높지 않은 상태이고, 이게 드러나는 시점 자체가 상속이나 증여할 때라며 상속세를 손질해선 안 된다는 태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야당의 시각은 철 지난 정치 구호에 불과하며 오히려 상속세는 서민 증세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야당은 부의 세습이나 대물림을 얘기하지만, 1999년 이후 상속·증여세는 세율이나 과표 변화가 없었다"며 "인플레이션(물가상승)으로 상속세를 안 내던 사람이 더 내게 된 것을 얘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예를 들면 강남의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가정에서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그 집을 팔아야 한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면서 "이제는 부자증세가 아니라 서민증세가 문제다. 상속세 개편에 대해 전반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이 여론 환기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국조세연구포럼의 학술지(조세연구)에 발표한 '상속세 세율 및 인적공제에 관한 개선방안 연구' 논문에서 현행 상속세는 과세표준 구간이 물가 상승 등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지난 2000년 이후 현재까지 그대로인 최고 과표구간과 세율이 문제라고 했다. 박 교수는 최고세율 적용 구간을 30억 원 초과에서 50억 원 초과로 높이고, 최고세율은 50%에서 40%로 낮추자고 제언했다.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30억 원 이상 과표구간의 경우 현재 기준으로 120억 원 정도는 돼야 경제 규모나 화폐가치에 맞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도 상속세 관련해 폐지나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인터넷 아이디(ID) 이**는 "상속세는 악법이다. 다 싫어하는데 왜 안 고치느냐"며 "아이 안 낳는 것도 상속세가 원인일 수 있다. 후손에게 물려 주고 싶은데 안되면 뭐 하러 열심히 일하느냐"면서 "가난하게 살다 겨우 먹고살 만해져 기분 좋다가 상속세니 증여세니 신경 쓰게 만드니 불편하다"고 했다.

    인터넷 ID as**도 "세금 또박또박 내고 모은 재산인데 이중과세 아닌가"라며 "어느 정도라야지. 재산 모아서 무엇하나"라는 의견이다.

    인터넷 ID 청**은 "(상속세는) 최저 5%, 최대 20%가 적절하다고 본다. 5억 원 이하는 면제, 5억~10억 원 이하는 5%, 대기업 집단은 20%로 구간 분할 차등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는 의견이다.

    최근에는 야당 일각에서도 상속세를 손볼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지난달 26일 페이스북 글에서 "초일류 대형 기업이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초일류 기업을 더 많이 키워내야 한다"며 "기업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기업이 너무도 과도한 규제에 억눌려 있으니 정권이 바뀌면 줄 대기 바쁘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기업승계를 위한 상속세 개편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면서 "재벌기업을 보는 국민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부의 대물림에만 관심이어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사는 지역에 대기업이 들어오길 희망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