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다피도 ‘인민’을 내세웠다

  • ▲ '인민'을 내세웠던 카다피의 최후ⓒ
    ▲ '인민'을 내세웠던 카다피의 최후ⓒ

    무바라크도 카다피도 처음 시작할 때는 전제군주제를 뒤엎은 ‘혁명가’였다. 그들이 만약 전제군주제에서 과도적인 군부독재 기간을 거쳐 근대민주제로 점진적인 변화를 수행하거나 그것으로 진입하는 문을 열기만 했더라도 그들은 오늘 같은 더럽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장악하면서부터 비(非)근대적이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일개 추악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권력에 취해 언젠가는 혁명적인 '시민/국민/민중'에 의해 타도될 미래를 스스로 자청한 것이다.

    카다피 독재를 떠 바친 이론인즉 ‘자마힐리아(인민권력)’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독재자가 다 그렇듯 그는 ‘인민/민중’을 내걸었다. ‘인민-민중’으로부터 만데이트(위임)를 받아 독재를 한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모택동의 '인민민주전정(專政)'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민/민중’이 언제 어떻게 그들 독재자에게 전권을 위탁했다는 것인가? 그런 적 없다. 그들은 그냥 무단히 독재자가 되었다.

    결국, 국민 기본권 가운데서도 특히 자유권 조항, 법에 의한 지배, 의회주의, 복수정당제도, 자유선거를 빼놓은 ‘'인민/민중’ 운운은 독재자가 스스로 입는 기만적 외피(外皮)에 불과하다.

    김정일이 언제 ‘인민’의 자유의사에 물어보고 독재자가 됐나?

    내년도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기세가 워낙 강해서 자유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을 쓰자는 타협안이 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왜 그렇게 싫을까?

    민주주의에는 자유민주주의 말고도 다른 민주주의가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라고 명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말고 카다피의 ‘자마힐리아’를 위해서? 수카루노의 ‘교도민주주의’, 아유브 칸의 ‘기초민주주의’를 위해서?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인민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를 위해서냐고 물어도 “그런 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딱히 “이걸 위해서”라고 말은 하지 않는다. 말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보는 모양인가?

    그러나 그들 마음속에는 “자유민주주의 아닌 이걸 위해서”라는 게 분명 있긴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한사코 자유민주주의는 안 된다고 하겠는가? 관련 학계에 도대체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기에 이처럼 자유민주주의를 기피하는가?

    대한민국의 헌법 자체가 '국민 주권론+자유주의적 기본권'의 두 기둥으로 짜여 있다. 타협안으로 나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도 카다피, 수카루노, 아유브 칸, 마르크스-레닌, 모택동, 김정일의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자유민주적 헌법이 애시 당초 잘못 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차라리 솔직하게 고백하라. 그리고 그런 입장이라면 더 이상 토론은 무의미하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