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산율 상승은 사회의 가족적, 여성친화적 분위기 덕분”"다자녀 부모는 언제 어디서나 '할인' 혜택 받아"
  • 한국에서 사전조사를 하던 중 최근 프랑스 출산율이 증가함에 따라 파리 시내에서 어린 아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대중매체에 비추어진 파리는 바게트와 담배를 들고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는 파리지엥, 파리지엔느들로 가득 찬 도시였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길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기들'

    파리에 도착해 보니 이곳은 아이를 안고 있거나 유모차를 끄는 여성들의 천국이었다. 버스, 지하철, 트램(노면전차; 도로상의 일부에 부설한 레일 위를 주행하는 전차)과 같은 대중교통에서든 마트 안에서든 공공장소에서든 2살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국의 거리가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2살 미만의 아기를 거리에서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또한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거나 그를 맡길 수 있는 가까운 지인을 어렵게 찾고는 한다. 필자의 어머니도 출산 후 하시던 일을 계속 하시기 위해 필자를 외가에 맡겨 놓으셨었다. 일을 계속하시면서 필자와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만큼 한국에서 여성이 직장과 육아를 겸행하기는 참 힘들다. 한국과 프랑스의 거리 풍경을 비교하다 보니 프랑스 여성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어린 아이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데에는 기업의 가족적이고 여성친화적인 문화가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살고 있는 스튜디오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발코니 창을 열면 학교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덕에 종종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바라볼 수 있다. 평일 수업은 점심시간을 기준으로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는데 8:30~11:30이 오전 수업 시간이고 오후 수업은 1:30~4:30까지 진행된다.

    매일 아침 8:30면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등교한다. 대개 부모 중 한 명은 출근하기 전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처럼 보인다. 출근시간이 빨라서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데려다 주는데 어려움을 겪는 한국 부모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매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하굣길의 풍경도 비슷하다.

    오후 반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부모 중 한 명이 아이를 데리러 온다. 프랑스의 가족문화와, 가족문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프랑스 기관의 친가족, 친여성적 문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 초등학교 교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 ▲ 프랑스의 공립초등학교. 매일 아침이면 부모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 프랑스의 공립초등학교. 매일 아침이면 부모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사전에 Emmeline과 미리 약속시간을 정하고 점심시간에 프랑스의 한 공립 초등학교를 찾았다. 프랑스에서는 관공서인 병원, 은행 등을 갈 때에도 미리 전화로 약속(Rendez-vous)을 정하거나 직접 방문해 약속을 잡은 후 방문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한국에서는 몇 분 안에 열 수 있는 은행계좌도 프랑스에서는 약속을 정하는 기간까지 합하여 1주일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병원 약속을 잡아 두었다가 예약이 2주 후에 잡혀 막상 병원에 갔더니 왜 아팠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이니 프랑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얼마나 여유로운지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의 초등교육 기관은 내가 방문한 공립학교(Public State School)와 사립학교 1(Private School(degree 1)), 사립학교 2(Private School(degree2)), 이렇게 크게 3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Public State School은 공립기관으로 State(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에 해당)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며, Private School은 등급(degree)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교육비를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초등 교육이 의무인 한국에 비해 이곳의 초등교육은 꼭 학교에서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를 원하지 않는 부모는 학교 대신 집에서 아이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칠 수 있다. 대신 정기적으로 State에서 파견한 사람이 그 홈스쿨링 가정에 방문하여 아이가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Emmeline은 프랑스 공립초등학교의 6-11학년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프랑스인이지만 한국문화에 매우 관심이 있다고 말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드라마를 보았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인인 나를 친근하게 느끼며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었다.

    Emmeline도 최근 10년간의 프랑스 출산율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파리는 프랑스의 중심인 대도시라 그 차이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프랑스 남부지방 등지에서는 출산율 증가 폭이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프랑스 사회는 어떻게 여성들이 좀 더 편안하게 출산과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을까?

    언제, 어디에서나 통하는 '다자녀 계산법'

    프랑스에서는 고속철도인 TGV를 이용할 때, 탁아소나 학교에 아이를 맡길 때, 공연을 관람할 때 등 일상생활 속에서의 지출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 상황에서 언제나 기준이 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는 그 사람의 수입이 얼마인가 이며, 두 번째는 얼마나 많은 자녀를 가지고 있는가 이다. 수입이 적고, 또 많은 자녀를 가지고 있을 경우 각 지출 상황에서 내야 하는 비용이 줄어든다. Emmeline에 의하면 이 계산법은 거의 모든 곳에서 통한다고 한다.

    급여에 따라 차등 비용을 내는 것도 흥미롭지만, 자녀 수에 따라 평소 생활 속에서 혜택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여성이 아이를 낳는데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한 요소로 보인다. 예를 들면 고속철도 TGV의 경우 자녀 3명을 가진 가족에게는 전체 비용의 30%를 할인해 준다.

    자녀의 수를 증명하는 가족카드를 만들면 꼭 자녀를 동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어머니 혹은 아버지 혼자 TGV를 이용할 경우에도 역시 1인 기준 티켓 가격의 30%를 할인 받을 수 있다.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그 가족은 평생에 걸쳐 다양한 할인 혜택을 누리게 된다.

    여성을 위한 출산휴가 및 급여

    프랑스 사회에서는 여성이 아프거나 출산문제로 일을 할 수 없을 때 최대 3개월까지 80%의 임금을 지불하며 휴가를 준다. 유급 휴직 기간은 그 여성이 이전에 몇 년 동안 일을 해왔는지 측정한 후 결정되며, 그 기간이 지나면 여성은 계속을 일을 할 지 중단할 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기 때문에 출산 이후 회사에서 무언의 압력을 받으며 일을 포기하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은 한국에 비해 프랑스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이 출산 후에도 일을 계속한다.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기업이 제도적, 문화적으로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탁아소와 방과 후 아동보육 기관

    “시(City)는 아이들을 위해 보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라며 Emmelline이 입을 열었다.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2달 동안 Creche라는 탁아소에서 아이를 무료로 맡아 준다. 그 동안의 비용은 City가 지불하며, 그 이후의 비용도 매우 저렴하다고 한다. Creche에 맡길 수 있는 아이는 생후 6주부터 4세까지이다.

  • ▲ 인터뷰에 응해준 공립 초등학교 교사 에밀리앙(Emmelline).
    ▲ 인터뷰에 응해준 공립 초등학교 교사 에밀리앙(Emmelline).

    또한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5시 이전에 모든 수업이 끝나는데, 오후 늦게까지 일하는 부모를 위해서 Etudes라는 방과 후 아동보육 기관도 마련되어 있다. 이 기관에 아이를 맡기려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비싸지 않고 그 비용도 부모의 월급, 자녀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 월급이 적고 자녀의 수가 많을수록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다.

    프랑스 조직 문화

    인터뷰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프랑스의 조직 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Emmeline이 한국과 일본의 야근제도와 전형적인 관료제도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 프랑스를 비교하며 쉽게 설명해 주었다.

    프랑스 회사, 조직의 일반적인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절대 근무시간을 초과하여, 즉 오후 6시가 넘도록 회사에 남아 있지 않는다고 한다. 상사가 하루에 할 일을 정확히 지시하기 때문에 퇴근 시간 전 까지 그 일을 끝내는 것은 마땅한 임무이고, 그 이상 남아있으면 오히려 일에 능숙하지 못하거나 게으름을 피운 사람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직급에 상관없이 그날 자신의 업무를 먼저 처리한 사람일수록 일찍 회사를 떠나고, 심지어 빨리 떠나는 사람일수록 승진율이 더 높다고 한다. 그만큼 일을 더 능숙하고 빠르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 사회에서 회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Emmeline은 상사나 직장동료와 업무가 끝난 후 밖에서 함께 식사하거나 술을 먹는 ‘회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공적인 일을 같이 하는 동료일 뿐이지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데 왜 함께 식사를 하는지 오히려 되물었다.

    가끔 회사에 직원들의 가족을 초대해 가벼운 파티를 열기는 해도, 일이 끝난 이후 동료들끼리 식사나 술을 함께 하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 답했다. Emmeline은 “일하는 장소는 집이 아니며, 상사나 동료는 친구나 가족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프랑스에서 ‘함께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저녁식사 시간은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된다. 따라서 프랑스 조직의 여성, 남성은 통상적으로 6시 일과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학교에 갔다 온 아이와 저녁시간을 통해 충분한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프랑스인에게 “함께 먹는다”는 것은

    “함께 먹는 것은 친근함의 표현이에요” “함께 먹는 시간은 가족을 위한 것이죠”.

    프랑스인에게 식사의 의미를 물었을 때 Emmeline이 가장 먼저 한 말이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프랑스인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라고 했다. 특히 가족들과의 저녁식사 시간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혼자 식사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외로워 보여요. 저녁시간은 가족들을 위해 아주 중요한 시간이에요. 커플이나 가족이나 저녁식탁을 언제나 함께 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유지될 수 없어요. 함께 식사하며 하룻 동안 힘들었던 일, 기쁜 일을 나누며 서로를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죠. 일하는 사람들은 업무 시간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해요.”

    이런 프랑스의 식사 문화를 이해하면 왜 직장인들이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있지 않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얼마 전 저녁식사로 프랑스 정통 코스를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갔을 때, 아페리티프(서양요리의 정찬에서 식욕증진을 위하여 식탁에 앉기 전에 대기실에서 마시는 술)부터 디저트까지 모두 끝내는 데 약 5시간이 걸렸다. 각각의 요리는 약 30분 간격으로 하나씩 서비스되며 식사하는 사람들은 그 사이에 충분히 대화하고 음식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물론 일반 가정에서는 5시간까지는 아니겠지만 약 2시간 정도로 여유 있게 저녁 식사를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모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적인 프랑스 문화가 여성들에게 업무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가정으로 일찍 돌아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의 조직은 유급휴직 보장, 자녀 수 별 할인율 적용 등 제도적으로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이 스스로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사회와 기업, 조직 전체에 흐르고 있는 친가족적, 친여성적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침 일찍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회사 업무를 끝낸 뒤 저녁 시간에 맞추어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 온 가족이 함께 식사 할 수 있는 문화 속에서 여성은 일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된다.

    또한 일하는 동안 아이를 맡길 학교와 보육기관의 비용이 상당히 저렴하다는 점과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한 생활 전반적인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 같다.

    지신정(한국선진화포럼 해외홍보대사,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