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은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우선적으로 계승해야정보기관의 눈은 밖으로, 기술은 앞서도록 노력해야
  • 냉전 질서가 붕괴된 후 세계 각국은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냉전 시절에는 서로 ‘편’을 가르던 정보기관들 또한 이 경제전쟁에서 큰 몫을 하고 있다. 세계 강대국과 선진국들은 국가정보기관을 통해 경제정보 수집은 물론 테러, 조직범죄 등을 예방하고 국익을 지키는 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도 이름을 바꾼 뒤 이런 세계 경제전쟁 속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선진화포럼 홍보대사들은 국가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꾼 이종찬 前국정원장을 만나 그의 경험과 정보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선진화홍보대사(이하 <선>) 이사님께서는 중앙정보부 공채 1기라고 들었습니다. 현재의 국정원은 그동안 명칭을 바꿔왔으며 그에 따라 역할도 변화해 왔는데요, 중앙정보부 공채 전과 후, 안기부, 국정원일 때의 각각의 역할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이종찬 前국정원장(이하 <이>) 공채 1기가 1965년 도입되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임무가 크게 변화된 것은 없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중앙정보부 안에는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기능과 정권안보를 튼튼히 하는 기능이 있었어요. 국가안보는 국가가 존속하는 한 대단히 중요한 임무입니다. 정권안보는 국가 안보에 비하면 사실은 덜 중요한 임무라고 볼 수 있죠.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정권안보의 역할을 하는 정보기관은 없어요. 우리나라는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에 정권안보의 기능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두 가지 임무가 바뀌는 역현상이 나타나 저 역시도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안보 기능이 강조되는 역현상이 일어난 결과, 10.26사태처럼 중앙정보부장(김재규)이 대통령(박정희)을 시해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역현상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고,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아 개혁안을 만들어서 정권안보 기능을 약화시켰습니다.

  • <선>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입니다. 그래서 국정원은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국정원 운영 체제도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정원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정보기관은 최고 권력자에게 직결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면, 아래서 올라가는 정보는 왜곡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중간에서 정보가 걸러지지 않고, 직속으로 전해지는 것이 최선이기에 국정원이 대통령의 직속 기관인 것은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보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정보가 방향을 잃을 수 있다는 거죠. 또한 이를 악용하게 되면 그에 따른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확고한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뚜렷한 안전판이 존재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국정원은 확고한 안전판이 존재한 상태에서 정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보 활용 단계가 국가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국가의 성숙 정도를 평가하는 것과 연관될 수 있습니다. 보통 성숙한 국가의 정보사용자는 정보의 전달 단계를 잘 활용하기 마련이죠. 반대로 좀 미숙한 상태의 국가는 정보 전달 단계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해서 오히려 정보까지 왜곡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도 성숙한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정보의 활용 및 전달 단계에서 성숙함을 유지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보를 잘 활용할 줄 아는가 못하는가를 보면 국가의 성숙 정도를 알아"

    <선> 과거 국정원 개혁을 위해 노력하셨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올바른 정보기관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날의 국정원이 나가야할 길에 대해서 이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 국정원 개혁의 기본은 “모사드(이스라엘의 국가정보기관)를 모방하자”에서 시작됐어요. 모사드의 역사는 이스라엘 건국의 역사와 다름없죠. 여기서 힌트를 얻어, 과거에 독립운동을 했던 역사와 정보기관의 역사가 연결되면, 우리나라의 국정원 역시 모사드처럼 발전된 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의 의거 활동은 김구 선생이 주도한 한인 애국단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국가정보기관이 독립 운동의 역사를 계승한다면 국민을 감시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에게 사랑받는 조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국정원에 김구 선생과 신채호 선생의 초상화를 걸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광개토대왕의 패기를 배우라고 광개토대왕릉비를 모조해 입구에 가져다 놓았어요.

    또한 과거에는 안기부가 NSPA로 표기되어 있었어요. NSPA의 A는 Agency로서 국민을 다스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안기부(NSPA)에서 국정원(NIS)으로 이름을 ‘Agency’ 대신 ‘Service’로 바꿨습니다. 비밀임무를 통해 국민에게 봉사 한다는 생각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국가정보원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국정원이 획득한 정보를 비밀사항을 제외하고는 국민에게 모두 공개했어요.

    정리하자면 정보기관 개혁을 위해서는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우선적으로 계승하고, 우리의 시각은 대외를 향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정보기술 면에서는 남이 쫓아올 수 없는 만큼 발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국정원의 목표이고 이를 당장 실행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선> 우리나라가 앞으로 벤치마킹을 할 만한 외국의 정보기관이 있을까요? 

    <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사드(이스라엘의 국가정보기관)가 벤치마킹을 해야 할 기관이라고 봐요. 세계 각 국이 모두 정보기관을 가지고 있고, 일장일단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아랍의 많은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우리나라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비슷한 환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자체를 지키는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벤치마킹을 할 기관이라고 생각해요.

    모사드의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아요. 시리아가 핵발전소를 만든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바로 이를 저지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정보력과 행동 능력이 있어야만 북한의 핵무기 제조를 막을 수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개발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있죠. 북한이 핵을 소유하고 있다면 1차적인 피해자는 우리나라입니다.

  • 정보는 그 자체만의 독립된 무대(지하세계)가 따로 있어요. 그런데 현재 우리는 독립된 무대(지하세계)에 들어갈 능력이 약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정보의 세계, 또 하나의 우주가 존재하는데 거기에 진입하는 단계일 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정보 분야를 발전시켜야 하고, 앞서 실력을 쌓는 일에도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러한 성장의 바탕에 수반되는 더 많은 고난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정보의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 부족해"

    <선> 국정원장으로 재임하시던 동안 이사님께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셨던 일은 무엇인가요? 또 가장 힘들었던 국가차원의 사건이나 개인적으로 겪으신 에피소드가 있으신지요?

    <이> 제일 큰 보람을 느낀 것은 1975년도에 베트남이 통일을 했을 때에요. 그 당시 월남해 있던 우리 공관원들이 철수를 못하고 붙잡히면서 그 중 세 명이 억류되어 있었어요. 그 분들은 다 우리 요원들이었고 우리가 이들을 구출하는 작업을 해야 했어요. ‘치하’라는 형무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통을 해서 그 사람들을 빨리 구출해 달라는 메시지를 받게 되었죠.

    박정희 대통령께서 김재규 부장에게 지시를 해서 베트남과 접촉을 했는데 ‘우리는 북조선과 형제’라는 답을 얻었고 북조선의 허락을 받아야만 보내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남한-북한-베트남 3개국이 3자회담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북한이 형무소에 있던 500명의 좌익 세력을 내보내야만 우리 요원들을 구출해 주겠다고 했어요. 우리가 조사해 보니 4백여 명 가량이 있었어요. 모두 보내줄 수 없었기에 계속 교섭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최종 11명까지 합의가 되어 11명을 북한으로 보내주고 우리 3명의 요원을 구출해 오려고 했었죠. 하지만 합의가 된 1978년에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전쟁이 발발했어요.

    중국이 캄보디아 편을 들고, 북한이 중국 편을 들게 되면서 베트남은 회담을 깨버립니다. 그래서 베트남이 북한을 등지고 우리와 직접 교섭을 하게 됐어요. 그 때 김재규 부장이 부국장인 나를 불러서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출신의 사업가를 동원해야 한다고 했었죠. 여러 차례 교섭 끝에 10월 26일 아침에 베트남 외무부 부장관이 우리 대사에게 이스라엘 사업가를 함께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해주었죠.

    이제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이 발생했고 또 다시 교섭은 중단이 되어 버렸어요. 12.12 사태가 일어난 것이죠. 그리고 전두환 장군이 부상하게 됐고 나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전두환 대통령을 찾아갔어요. 전두환 대통령과의 면담 후 다시 공관원 구출을 위한 노력이 시작 됐어요. 그리고 2달간의 공백 끝에 세 사람을 구출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보람찬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일은 그 당시에는 다 비밀이었죠.

    가장 힘들었던 일은 5.18 조치가 일어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전두환 대통령이 정당을 만드는 역할을 나에게 지시했을 때죠. 그 당시는 정치활동이 규제된 상태였고 나는 정치를 해본 사람도 아니었어요. 또한 그런 혹독한 시기에 정치를 시작하고 정당을 만드는 것은 두 배로 힘든 일이 되었죠. 결국에는 민정당을 만들었어요.

    "베트남전 당시 요원 3명 구출하기 위해 수 년 동안 공작…가장 큰 보람"

    <선> 이사님의 일화를 듣고 보니 인생이 무척이나 드라마틱했던 것 같습니다. 국정원의 역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정원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정보기관은 국가의 안보라는 전제 하에 국민의 인권 침해가 발생할 때 종종 비판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정원의 바람직한 임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보통 외부에 공개 혹은 폭로 되는 것은 어떠한 문제가 이미 내포되어 있을 때 나타납니다. 잘 수행하고 있는 임무는 외부에 공개되어서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개되지 않는 암살이나 반인권적인 행동은 비난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보이지만 부적절한 사건들을 후에 모아보면 나쁜 짓만 하는 것으로 국정원이 비춰지게 됩니다. 정보기관은 어디까지나 확인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이라크 전쟁 때를 들어보죠. 이라크 전쟁에서 가장 먼저 전사한 사람은 CIA 요원이었으나 그는 군번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며 국립묘지에 묻히지도 못했죠. 임무가 그런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 마련이에요.

    국정원은 철저히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이 되어야 해요. 오로지 국민을 위하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 이사님께서는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서 현재 우당기념관 관장을 맡고 계시는데요. 독특한 집안의 내력이 있기 때문에 이사님만의 역사를 보는 관점이 있으시리라고 봅니다. 저희 선진화홍보대사들을 포함한 대학생들에게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서 어떠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까지 모두 성공시켰고 이제 선진화, 세계화의 진입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세계화, 선진화를 성공시킨다고 하여도 그 후 나라의 독립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보대사 여러분들과 다른 대학생들은 무엇보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한민국의 독립전쟁과 그에 따른 희생과 노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모래성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의식의 근원을 잃어버리면 조국의 세계화와 선진화까지 어렵게 되죠. 덧붙여 이런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세계화, 선진화에 성공했더라도 나라를 지켜낸 의식이 결여된다면 그 성공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나라를 지켜낸 과거 우리의 역사와 그에 대한 정신은 대학생 여러분들이 반드시 지켜나가야 합니다. 특히 과거 우리의 쓰라린 역사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또 다른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예를 들어보죠.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어린 아이에게 탈무드와 구약성서를 가르칩니다. 이는 바로 역사에 대한 가르침이죠. 우리도 이스라엘과 같이 학생들에게 조국의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임을 잊어선 안 돼…독립운동 정신을 지키고 밖을 봐야"

    그 다음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남북한의 총인구를 합쳐도 7000만 밖에 되지 않죠. 유럽에 비해서는 큰 나라지만 13억 인구의 중국과 1억2,000만 인구의 일본 등에 비교해보면 작은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은 그러한 엄청난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작은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는 동시에 유럽의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 등의 국가로부터 선진화된 태도와 논리를 배워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이 외국으로 뻗어나가는 대외 개방형의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80%에 육박합니다. 때문에 대외 개방을 해서 지금보다 더욱 밖으로 뻗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화교에 비하면 절대적인 수치는 분명 작지만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교민 비율은 더 큽니다. 한국인이 진출하고 있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점을 적극 활용하여 대외 개방형으로 가야합니다.

    과거의 중국을 살펴보면 주변 국가였던 말갈, 거란, 여진, 티벳 등은 모두 자신의 정체성은 잃은 채 중국에 동화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와 달리 중국에 동화되지 않았고 우리만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특성을 살려서 지금의 대학생들은 보다 더 넓게 바라보고 보다 멀리 뻗어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나는 선진화 홍보대사 여러분들과 젊은이들이 모두 세계화를 향해서, 외부를 향해서 도전하는 도전 정신이 있다고 믿으며 이를 적극 실천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종찬 前국정원장은 선진화홍보대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일제들에 저항했던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잊어버리는 순간, 미래는 없다”는 말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눈은 밖을 보고 기술과 실력은 남이 따라올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 역할을 여러분이 맡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는 그의 당부가 “과거를 기억하되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바라보라”는 말로 이해했다. 과거에만 매달리거나 장밋빛 미래만을 말하는 일부 사람들의 사탕발림보다 그의 당부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