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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박원순, 그가 쓴 '제주4.3보고서' 봤더니...

"폭동 진압 군경 살인자, 국가반역자로 몰아""폭동과 항쟁 구별 못하나? 진상 반드시 밝혀야"

입력 2011-10-12 18:00 수정 2011-10-12 22:33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느냐’는 좌파의 궤변을 부정할 확실한 물증이 최근 대중에 등장했다.”

벌써 8회째를 맞은 12일 이승만 포럼에서는 10.26 서울시장 재보선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제주4.3사건' 왜곡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박 후보는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장이었다.

“박원순 변호사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서 제주4.3을 폭동이 아닌 무장봉기라고 정의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답변해야 한다.”

이선교 목사(현대사포럼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강사로 나서 이 같이 문제를 제기했다.

▲ 11일 제8회 이승만 포럼 강사로 나선 이선교 목사(현대사포럼 대표)가 제주 4.3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데일리

박원순 왜곡과 과장, 그리고 거짓으로 얼룩진 4.3보고서 만들다.

◇ 남한 총선은 반대, 북한 선거는 지지, 이게 과연 봉기냐? 폭동이다!

이 목사는 “남로당 폭도 400여명이 경찰지서 11곳을 습격하고, 일반인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는데 폭동이 아니고 '민중봉기'라고 한 이유가 뭐냐”고 박 후보의 지난 행적을 캐물었다.

“제주4.3사건이 경찰의 탄압에 항거한 무장봉기라면 왜 1948년 5.10선거를 반대하고 북한의 선거를 지지하였느냐”는 것이다.

이 목사의 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박 후보가 단장으로 주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4.3사건이 3.1발포사건과 경찰과 서북청년회의 탄압에 항거한 무장봉기라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실상은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제주 좌파 남로당 폭도 400여명이 경찰지서 11곳을 공격하여 고일수 순경의 목을 쳐 죽이고, 김장하 순경 부부를 대창으로 찔러 죽이고, 선우중태 순경을 총으로 쏘아 죽인 사건이었다.

또 일반인 문영백의 딸 숙자(14)-정자(10) 자매까지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고, 애월면 구엄마을 문기찬(33), 문창수(34)도 죽였다.

이 목사는 “경찰에 항거한 무장봉기라면 왜 위와 같이 일반인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녀들까지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는가? 이것이 폭동이 아니고 무장봉기인가”라며 따져 물었다.

1948년 4월 3일부터 7월 20일까지 폭도들의 공격으로 경찰 56명, 우익 235명이 죽었고, 폭도들은 교전 중 15명이 죽었다.

4.3 사건은 또 5.10 총선에서 제주도 3개 선거구 중 2개 선거구를 무효로 만든다.

이 목사의 주장에 따르면 4.3사건을 일으킨 폭도들은 우익과 선거관리위원들과 투표를 하려는 양민들을 죽이거나 산으로 내몰면서 5.10선거를 반대했다. 전국에서 유일한 사태였다.

특히 같은 해 8월 25일 북한 건국 선거에서는 북한 총선을 지지했던 폭도 사령관 김달삼이 제주도민의 85%라고 주장한 5만2,000여명이 지지 투표를 해 북한 건국에 앞장섰다.

이 목사는 “제주4.3사건이 경찰의 탄압에 항거한 무장봉기라면 왜 5.10선거를 반대하고 북한의 선거를 지지했나”라고도 박원순 후보에게 물었다.

▲ 11일 제8회 이승만 포럼 강사로 나선 이선교 목사(현대사포럼 대표)가 제주 4.3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데일리

◇ 폭도 사령관 이덕구 대한민국에 선전포고 사실 왜 빠졌나?

이 목사는 이어 “제주4.3사건 2대 폭도사령관 이덕구가 대한민국에 선전포고한 것을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서 왜 뺐느냐”고 지적했다.

폭도사령관 김달삼은 제주도민이 선거한 투표용지 5만2,000여장을 가지고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이후 그는 제주도로 돌아오지 않았고 같은 해 9월 15일 이덕구가 제2대 폭도사령관이 됐다.

이덕구는 10월 24일 대한민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잦아들던 4.3폭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4.3진상조사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 이덕구는 대한민국에 선전포고를 한 다음 1948년 11월 2일 제주주둔 9연대 6중대를 공격해 중대장 이하 14명(21명)이 죽였다. 치열한 전투 속에 제주도는 밤에는 인민공화국, 낮에는 대한민국이 되는 혼란이 거듭됐다.

마찬가지로 이 내용도 4.3진상조사보고서에는 빠져있다.

◇ 좌파 국군과 경찰의 반란, 이걸 빼야 봉기라 우길 수 있었나?

제주 4.3진상보고서에는 9연대 안에서와 경찰 안에서 일어난 좌파 반란사건도 기록돼 있지 않다.

1948년 10월 28일 제주도 주둔 9연대 강의현 소위 등 80여명의 좌파 국군이 반란을 일으키려다 사전에 발각돼 모두 일망타진됐다. 또 3일 뒤인 10월 31일에는 75명의 좌파 경찰과 공무원이 제주도를 공산화하려다 실패했다.

이 목사는 이 내용이 빠져야만 4.3사건이 봉기로 규정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후보가 이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고서는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국군과 경찰의 반란 사실은 정부의 계엄령 선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 사건에 대해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 내란으로 규정하고 진압했다.

대한민국에서 제주도 내란을 진압하지 않으면 제주도가 공산화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는 이 사실은 모두 빠졌다. 대신 아무 잘못이 없는 제주도에 계엄령을 내려 양민을 학살했다고 했다. 이 목사는 “결국 엉터리 심사로 4.3희생자 1만3,000여명이 결정 됐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제주4.3 폭동 책임은 김달삼, 이덕구 등 폭도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와 국군과 경찰, 그리고 미군에 있다는 보고서는 “말도 안된다”고 했다.

그는 “보안법 철폐,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좌파, 그리고 이를 주도한 박원순 후보는 분명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이 같은 주장으로 제주4.3유족들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지만, 지난 9월21일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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