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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장 때 공금 유용 혐의로 재판을 받는 자크 시라크(78) 프랑스 전 대통령이 당시 아프리카 지도자들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와 재차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프리카에 두터운 인맥을 쌓은 변호사로, 시라크와 도미니크 빌팽 전 총리의 보좌관을 지낸 로베르트 부르기는 11일자 일요신문 '르 주르날 뒤 디망슈'에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시라크와 빌팽에게 현금을 가득 채운 가방들은 건넸다고 폭로했다.
부르기는 시라크가 1980년대와 1990년대 파리 시장으로 재직하던 때 파리시청에서 여러 개의 돈가방을 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때 시라크에게 간 돈 액수가 결코 500만 프랑(약 11억2천만원 이상) 이하는 아니며 최대 1천500만 프랑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부르기는 "첫 번째 돈이 시라크에게 전달될 때 빌팽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돈은 자이레(현 콩고민주공화국)의 세세 세코 모부투가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1995년이다. (자신의 전임자인) 자크 포카르가 시라크에 주는 1천만 프랑을 내가 받았다"며 "건넨 자금이 해마다 수백만 프랑에 달했고 선거 때는 더 많았다"고 털어놨다.
부르기는 시라크가 승리한 2002년 대통령 결선투표 유세 당시 빌팽이 자신에게 대놓고 "다음 단계를 실행에 옮기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 지도자 5명이 빌팽의 사무실을 찾아왔으며 이들은 세네갈의 압둘라예 와데, 부르키나파소의 블레즈 콤파오레, 코트디부아르의 로랑 그바그보, 브라자빌 콩고의 데니스 사수 은구에소, 가봉의 오마르 봉고였다고 소개했다.
이들 5명은 그 자리에서 1천만 달러 정도를 2002년 대선자금으로 주었다고 브루기는 덧붙였다.
그러나 빌팽은 브루기의 주장을 완강히 부인하며 "이는 전부 얼토당토않은 것으로 (자신의 비리를 숨기려고) 연막을 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차기 대선 주자 물망에 오르내리는 빌팽은 브루기의 발언이 프랑스 정계가 과거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과 종종 떳떳하지 못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 쪽으로 의도적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부르기는 시라크와 빌팽을 보좌하다가 2005년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의 진영에 가세하면서 이들을 떠났다.
한편 프랑스 법원은 기억상실증을 앓는 시라크가 재판정에 출두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계속 진행키로 했다고 지난 5일 발표한 바 있다.
재판장인 도미니크 포트 판사는 시라크의 변호인이 그가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고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기에는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사소견서와, 자신이 참석하지 않더라도 재판이 마무리되기를 원한다는 시라크의 서한 등을 검토한 끝에 이같이 결정했다.
시라크는 1977-95년 파리시장에 재직하면서 측근들을 위장 취업시켜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기소됐으며,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징역 10년에 15만 유로(약 2억3천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