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김 내정자가 '힐 트라우마'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10일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것으로 여겨졌던 성 김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의 인준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의미있는 언급을 했다.

    `힐 트라우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국무부 차관보이자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힐 전 차관보는 6자회담 무대에 등장한 뒤 부시 행정부가 견지해온 대북 강경책에서 벗어나 과감한 협상을 전개한 인물이다. 재선에 성공했던 부시 전 대통령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도 그에게 협상의 전권을 사실상 위임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는 9.19 공동성명 채택과 북한과의 핵폐기 협상을 진행했다.

    이 때문에 그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내 보수파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보수파들은 힐이 북한과의 대화에 집착해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쏘아부쳤다. 심지어 힐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연결해 '김정힐'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 소식통은 "성 김 지명자에 대한 보류(HOLD) 의견을 개진한 인사가 공화당 상원의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대북정책과 관련된 공화당의 견제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공화당 측이 대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년여 견지했던 '전략적 인내' 기조를 버리고 외교적 성과를 의식해 과감한 대북 협상에 나서는 것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인터넷판은 8일 최소한 1명 이상의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성 김 지명자에 대한 인준을 보류하라고 요구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힐 전 차관보 이전인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내며 과감한 대북 협상을 주도했던 웬디 셔먼 신임 국무부 정무차관 지명자에 대한 상원 인준도 지연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화당의 '경계심'이 실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심지어 셔먼 차관 지명자의 경우 공화당 측의 거부감이 강해 한동안 국무부 정무차관직이 공식으로 남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있다.

    과거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뒤 2008년 봄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캐슬린 스티븐스도 힐 차관보와 가까운 사이였고, 그의 대북 정책을 지지한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상원 인준이 4개월 가량 지연됐다. 당시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스티븐스 대사의 미온적인 태도를 명분으로 삼았다. 성 김 지명자도 힐 전 차관보와 매우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성 김 지명자에 대한 상원 인준이 상당기간 늦어질 경우 북한 핵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등 현안이 산적한 한미 관계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의회 사정에 정통한 또 다른 소식통은 "재외공관장에 대한 의회 인준이 정치적 이유로 인해 무산되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적절한 시점이 되면 상원의 인준절차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측도 미 상원내 분위기를 탐색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성 김 지명자의 인준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