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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만나는 공백을 메우기에는 2시간5분은 너무 짧았던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27일 오전 7시30분부터 2시간5분 가량 조찬을 겸해 만났지만 회담 결과물은 예상을 뛰어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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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과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27일 회담을 위해 청와대에서 3년만에 만나 악수하고 있다.ⓒ청와대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간 간만의 회담이지만 만났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는 선 정도의 밋밋한 결과다.
이 대통령과 손 대표간의 회담 테이블에 오른 민생 의제는 6개였다. 가계부채, 저축은행사건, 일자리 창출, 대학등록금, 추경편성문제, 한-미 FTA 비준 등이다.
이들 가운데 이 대통령과 손 대표는 가계부채, 저축은행 사건, 일자리 창출 등 3가지 의제에서 의견 일치를 봤다. 가계부채 관련해서는 10초 정도만 말하고 지날 정도로 사전논의가 충분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한-미 FTA 비준을 놓고는 서로의 주장만 있었다.
대학등록금은 의견 일치와 불일치가 반반이다. 등록금 인하와 대학구조조정을 병행 추진한다는 데는 견해를 같이했어도 구체적인 추진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6개 의제 가운데 양측이 멋스럽게 합의할 수 있는 대목은 ‘대학등록금’ 문제였다. 가계부채를 줄이고 저축은행 사건을 엄정수사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데는 의견 일치를 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합의가 당연한 의제였다. 반면 추경 편성, 한-미 FTA 문제는 실무회담부터 벽이 너무 높았다.
대학등록금 문제는 그렇지 않았다. 충분히 사전 논의를 통해 ‘그림’을 만들고 간만에 자리를 함께한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가 국민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거리’가 됐다.
그렇기에 이 대통령과 손 대표도 6개 의제 중 등록금 인하문제를 첫째로 올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얘기했을 지도 모른다.
그걸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회담 전에 미리 발표해 버렸다. 설익은 발표였지만 청와대와 민주당 입장에서 본다면 ‘김 새’는 일이 되어 버렸다.
청와대가 회담 며칠 전 “이 대통령과 손 대표간 회담을 고려했어야 했다”고 말한 데서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이날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도 “한나라당이 미리 발표하는 바람에 실무 회담부터 아쉬움이 컸다”고 토로했다.
손 대표는 더구나 이날 이 대통령에게 "내년 등록금부터 기존 보다 50% 인하 하자"고 말했다고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전했다.
회담 분위기는 괜찮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이 대변인은 “전체적인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보다는 진지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수석도 동의한 설명이다. 이 대변인은 “과거처럼 정부와 합의 숫자를 늘리는데 초점을 두지 않았다”는 총평도 이었다.
청와대 김두우 수석은 “그 동안 고착된 대립을 탈피해 대화정치가 시작됐고 향후 난제들에 대해 언제든 만나 논의할 계기를 만들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손 대표는 회담 전에는 태풍 피해와 손 대표의 딸 결혼 얘기 등을 놓고 환담을 나누며 회담 분위기를 돋궜다.
이 대통령이 “태풍 때문에 어제 저녁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3살배기 어린 아이를 구조하다 순직한 소방관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자, 손 대표도 이에 공감했다고 한다. 손 대표는 경기 도지사 시절 소방관을 늘리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데 대해 아쉬워했다고 김 수석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이 장관직을 두 번 역임한 것을 두고, “민주당에는 인재가 많다”고 덕담을 던졌다.
이 대통령은 손 대표 딸의 결혼을 화제로 올려 “나는 (손 대표와)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섭섭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섭섭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화답했다.
이날 이 대통령과 손 대표간에는 배석자를 물린 단독회담이 없었다. 당초 청와대는 실무회담 중 민주당에 단독회담이 어떠냐고 제안했다고 김 수석은 전했다. 이에 민주당측이 난색을 표해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측의 거부한 이유에 대해 김 수석은 “구체적인 사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말을 아꼈다.
정치권에서는 손 대표가 단독회동이 낳을 당내 ‘억측’을 우려했을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분당을 재보선 승리로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끊어가고 있는 마당에, 괜히 정치적 손실만 키울 수 있다고 봤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이날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백 브리핑’을 최대한 자제했다. 구체적인 내용 설명으로 들어가다 상대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염려한 것이다. “모처럼 쌓아 놓은 신뢰의 단초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게 김 수석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청와대는 앞으로도 늘 열려있는 자세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대화할 것”이라는 말로 후일을 기약했다. 후속 논의에 대해서는 여-야-정 회담을 통해 구체적으로 진행해 나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