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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 원 대 금융비리를 저지른 부산저축은행 그룹에서부터 차기 유력 대선주자까지 당황하게 만든 삼화저축은행, 게이트의 주인공에게 무담보 대출을 해주고 코스닥 업체 대표를 자살케 만든 보해저축은행까지. 저축은행은 ‘비리 공장’이자 ‘악의 소굴’처럼 보인다. ‘서민금융기관’이었던 저축은행이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서민 속에서 태어나 ‘꾼’들에게 먹힌 상호신용금고
상호신용금고. 30대 이상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이전부터 지역 서민들을 대상으로 신용협동조합처럼 활동하던 상호신용금고는 1972년 8월 3일 ‘상호신용금고법’이 제정되면서 제도권에 편입됐다. 상호신용금고는 은행과는 달리 신용등급이 낮고 담보가 없는 서민들을 위해 긴급자금을 쉽게 대출해주고 고금리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의 폭풍에 상호신용금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많은 상호신용금고가 부실화되고 주인이 바뀌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결국 1997년 전국적으로 231개이던 상호신용금고는 2001년에는 121개로 줄어들었다.
한편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아리랑구조조정기금과 한강구조조정기금을 만들고 산업구조 개혁, 금융구조개편 등을 내세워 부실화된 금융기관과 국내 기업을 해외에 매각했다. 당시 이 업무를 총괄 관리한 것은 윌버 로스가 CEO였던 로스차일드 앤 선스(Rothschild & Sons)였다. 이 시기 투입된 공적자금은 64조 원에 달했다.
정부의 공적자금관리 체계는 1999년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바뀌게 된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금융감독원 산하 기구로 개편된다. 1999년 중반 대우그룹 사태가 일어나면서 금융기관 부실이 심해지자 또 다시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기 시작한다. 2001년까지 투입된 대우그룹 관련 공적자금의 규모는 40조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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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과 2000년 상호신용금고는 게이트에 연루돼 망신을 샀다. 왼쪽은 정현준 씨, 오른쪽은 진승현 씨.
이 와중에 상호신용금고들은 각종 게이트에 연루돼 망신을 산다. 1999년부터 2001년 사이 정현준 게이트에 동방상호신용금고가 불법대출을 해준 게 드러났다. 이용호 게이트에서는 대양상호신용금고가 불법대출을 해줬다. 진승현 게이트에서는 열린상호신용금고가 연루된 게 드러났다. 상호신용금고 업계는 이런 일이 터지자 정부에 ‘신용금고라는 명칭을 바꿀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상호신용금고를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꿀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할 준비를 했다. 이 법률을 기획하고 입법한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진념 현 삼일KPMG회계법인 고문이었고, 실무 책임자인 금융정책국장은 이종구 현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2001년 말 이렇게 ‘상호신용금고법’을 ‘상호저축은행법’으로 개정하면서 2002년 3월부터 상호신용금고들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상호신용금고는 상호저축은행으로 변신했다. 이와 함께 서민금융 활성화를 명분으로 예금 보호한도도 1인당 2,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높였다. 상호신용금고 시절에는 허용되지 않던 PF 대출도 가능하게 해줬다. 단 ‘국내에서만’이었다.
상호저축은행들은 ‘은행’이라는 이름도 얻고 예금자 보호한도도 높아진데다 PF까지 가능해지자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부실을 걷어내지 못한 일부 저축은행들은 회사를 M&A 시장에 내놓았다. 2002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저축은행 M&A 붐을 통해 주인이 바뀐 곳들이 늘어났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대형 자본가도 아닌 이들이 속칭 ‘바지사장’을 내세워 저축은행 수 곳을 인수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의 주역 저축은행 PF, 지금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던 무렵 부동산 광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열풍이 뜨겁던 시절, 벤처 거품으로 땅값이 극도로 치솟았던 강남 지역 땅값은 물론 용산, 마포, 양천 등지의 아파트 가격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실제 2001년 3.3㎡ 당 3,000만 원 대이던 청담동 일대 땅값은 나중에 7,000만 원까지 올랐다. 20001년 당시 3.3㎡ 당 1,000만 원 대이던 용산 재개발 지역 땅값은 평균 4,500만 원까지 올랐다. 서울 강북지역과 수도권 일대 아파트 가격도 급격히 올랐다. 강북의 한 지역은 한 채 2억 가량 하던 아파트 가격이 불과 2~3년 사이에 4억 원까지 치솟았다. 이 분위기는 2006년까지 이어진다.
당시 금융기관에는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도 끼어들었다. 저축은행들은 PF 대출은 물론 부동산 담보대출에도 적극적이었다. 일부 저축은행은 ‘아파트는 시가의 90%까지 대출해 준다’는 현수막을 여기저기 내걸었다. 하지만 이때가 부동산 광풍의 ‘끝물’이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지방을 시작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축은행들은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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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자료출처: 금융자문사 더 벨]
이때 또 노무현 정부가 나선다. 금융감독원은 2006년 10월 18일 ‘저축은행의 해외 PF를 허용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2007년 초부터 저축은행의 해외 PF가 시작된다.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공식 진출’도 이때부터다.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덕수 현 주미대사였고 금융정책국장은 임영록 현 KB금융지주 회장이었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저축은행의 해외 PF와 부동산 PF 부실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일명 ‘8․8 클럽’을 만든다. ‘8․8 클럽’이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에 고정이하 여신비율이 전체 여신 중 8% 이하’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저축은행을 말한다. 여기에 포함된 저축은행은 ‘우량 저축은행’으로 분류돼 80억 원 이상의 PF 대출이 가능토록 만들었다. 이 ‘8․8 클럽’의 기준을 만든 사람은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자 금융감독원장이었던 윤증현 前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저축은행을 감싸는 행태를 보이자 투자증권사와 외국계 은행들도 본격적으로 저축은행을 인수하거나 설립하기 시작했다. SC저축은행과 현대스위스저축은행,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저축은행을 인수 또는 설립한 뒤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다른 저축은행들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사정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인수 뒤 저축은행들의 부동산 PF(특히 브릿지론)의 부실이 심각하다고 보고 M&A를 유도했다. 이에 따라 2008년 9월 우량 저축은행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할 때 부담 금액에 따라 최대 5개의 신규지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상호저축은행법 시행령과 감독규정도 고쳤다.이때 저축은행들은 또 정부에다 ‘상호’라는 말을 뺄 수 있게 해달라고 거래를 제안했다. 정부는 2008년 12월 저축은행의 요구를 들어주는 법안을 제출했고,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이었고,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전광우 위원장이었다. 최근 구속된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이 당시 금융위 금융서비스 국장이었다.
<서울신문>은 ‘당시 금융감독당국이 자신들이 내놓은 정책이 성공하도록 우량 저축은행을 돌면서 부실저축은행 인수를 부추기거나 압력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금융 감독당국의 ‘작업’으로 부산저축은행은 대전·고려(현 전주)저축은행을,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충북 소재 중부상호저축은행을, 한화 그룹은 경기 부천 소재 새누리저축은행을 인수했다. 토마토저축은행도 부산 양풍저축은행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는 저축은행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었다. 뜨거운 감자 돌리기에 불과했다.
2010년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대두되자 저축은행들은 정부에 ‘공적자금’을 요청했다. 결국 자산관리공사(KAMCO)가 두 차례에 걸쳐 1조7,00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등 4조 원 가량의 ‘세금’이 저축은행에 투입됐다. 하지만 저축은행들은 정상화되지 않았다.
2011년 6월 현재 정부는 저축은행 부실정리를 위해 최대 15조 원의 공적자금 조성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저축은행의 도덕적 해이’ 아닌 ‘도덕성 전무한 금융 시스템’의 문제
PF가 막힌 지금 저축은행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을까. 서민들 돈을 뺏어먹고 산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미소금융 등을 시작으로 서민금융을 실시함과 동시에 2금융권과 대부업체들에게 서민대출이자를 낮추라고 압력을 넣었다. 첫 ‘시범케이스’가 현대캐피탈이었다. 이후 캐피탈 업체를 시작으로 대부업체까지도 서민들에게는 최대 35% 내외의 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은 지금도 40% 대의 대출 금리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연 이자 9%, 즉시 대출’ 등을 내용으로 한 스팸문자를 무작위로 뿌리고 있다. 일부 저축은행은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해 휴대전화 주인의 이름을 알고 전화하기도 한다.
저축은행들은 이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 지 대부업체들에게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2009년 12월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에 ‘대부업체에 대한 자금 대출을 자기자본의 5% 이내로 제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당시 금감원 측은 ‘저축은행의 대부업체 대출액이 7,000억 원 규모인데 일부 저축은행은 자기자본의 5%가 넘는 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저축은행은 이처럼 지금도 돈이 되는 곳이라면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이런 영업을 하는 건 ‘부실’ 때문이다. 한 민간연구소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자산 1조 원 이상의 저축은행 중 45%가 부산저축은행처럼 파산위험이 있고, 요주의가 6개, 주의가 5개로 나타났다고 한다. 즉 총체적 부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악성 금융기관’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수십조 원의 자금을 조성해 ‘떵떵거리며’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 금융감독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1999년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지금의 금융감독시스템은 특정 부처출신들이 주도한 것이다. 이들은 이후 ‘권력과의 유착’ 또는 ‘금품의 유혹’에 빠져 온갖 비리를 저지르다 발각된다.
2000년 정현준 게이트 당시 장 모 금감원 국장은 동방상호신용금고의 불법대출을 적발한 금감원 내부 조사를 무마하는 데 앞장선 것으로 밝혀지자 잠적한다. 장 국장은 23일 뒤 자살한 채 발견됐다. 2006년에는 금감원 수석검사역이던 양 모 씨가 H상호저축은행의 불법 대출에 개입한 게 발견돼 검찰에 기소됐다. 2007년에는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이 S저축은행 인수 과정에 개입해 수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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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에 적발된 금융감독원 비리 직원들[자료출처:세계일보]
금융감독원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역대 금감원장 5명 중 3명이 검찰수사를 받았고 2명이 기소됐다. 이용근 前금감원장은 2003년 나라종금 비리사건으로, 이근영 前금감원장은 2007년 김흥주 로비사건으로 검찰수사를 받았다.
그 주변으로는 권력이 둘러싸고 있다. 상호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 바뀔 때 드러난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에는 아태재단 상임이사와 사무처장, 행정실장, 김대중 前대통령의 처남 차 모 씨와 아들들, 국정원 차장, 국정원 고위간부, 지역 언론사 회장, 검찰총장, 검찰 지청장, 조폭 등이 망라돼 있다. ‘게이트’에는 모두 저축은행들의 불법대출이 끼어 있었다.
상호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 바뀐 뒤의 비리형태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 부산저축은행, 보해저축은행, 삼화저축은행 사건이다. 이 중 부산저축은행에는 광주일고 동문과 이른바 ‘민주화 인사’ 등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기업사냥꾼의 먹이가 된 코스닥 기업과 부산저축은행은 캄보디아와 인천효성지구에서 함께 드러난다. 여기에는 노무현 前대통령 측근의 측근이 등장한다. 이처럼 상호신용금고에서부터 저축은행까지의 변천사는 ‘권력형 비리’의 변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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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24일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이 모여 부산저축은행 경영진 규탄시위를 열었다.
다른 ‘권력’도 개입돼 있는 정황이 있다. 지난 8일 광주지검은 ‘안진회계법인 광주사무소가 보해저축은행의 BIS 비율을 1%에서 8%로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저축은행 부실 및 유상증자를 빙자한 사기 등에서 대형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이 개입된 정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속수무책이다. 금융감독당국이 금융비리 수사에서 ‘몸통’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물론 검찰, 경찰 모두 돈세탁이나 해외자금유출, 불법대출 등을 수사할 때 금융감독원과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부산저축은행과 같은 대규모 권력유착 금융 비리를 수사할 때마다 전전긍긍한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우량하다’고 알려진 금융기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거나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돌고 있다. A 저축은행과 B 자산운용이 그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지금의 금융감독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이 해당 금융기관의 주인인 탓에 정황은 있어도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