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판사가 물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통일을 소망한 것이다. 우리를 좌경-용공으로 매도하지 말라’고 답했습니다.

    필자에게 세 번의 감옥살이가 있었으니 모두 세 차례 이런 종류의 최후진술을 했습니다. 이 말은 참이고 또한 명백한 거짓이었습니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소망한 것은 참입니다. 이는 80년대 학생운동의 보편적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은 분명 혁명적이었으니 ‘매도하지 말라’는 말은 거짓입니다. 대한민국 체제를 변혁하여, 좀 거칠게 표현하면 전복하여 그 소망을 실현하려 하였습니다.

    80년대 학생운동이 존중하고 높이 평가했던 통혁당과 인혁당, 남민전은 모두 그와 같았습니다. 

    통일을 국시로 해야 한다는 국회의원의 발언조차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던 시기에 ‘그래 나 혁명하려 한다’고 하는 것은 사형 혹은 무기징역을 자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이 속한 조직 전체에게도 그런 형벌이 주어지게 되고 국민과 학생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은 연목구어였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거짓말은 오히려 칭송받는 덕목이었습니다. 본인을 지키고, 조직을 수호하며 운동의 고립을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하고 유용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대한 부정성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투쟁에 대해서까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양심을 왜곡하는 파탄일 뿐만 아니라, 안병직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김일성 3대 세습왕조에 대해 용인하도록 합니다.

    일제치하 사회주의자들의 격렬한 투쟁이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듯이, 권위주의시대 혁명좌파들의 조직적이고 헌신적인 투쟁은 국민들이 자신의 민주화요구를 실현시켜가는 데 기여한 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재는 건국세력, 산업화세력의 위대한 공로와 아울러, 이와 같은 좌파들의 투쟁도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가 손잡고 해야 할 일은 과거의 긍정성을 평가하고 부정성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부정성의 극복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사실의 직시로 이루어집니다.

    권위주의적 힘으로 산업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인권소외가 있었다는 부정성을 인정하는 것은 그를 극복해 가는 힘이 됩니다. 당시의 긍정성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우파세력은 이와 같은 성찰을 하고 있습니다. 우파 세력이 북한인권실현에 적극적인 것도 이와 같은 자성의 결과이자 연속성에 기인합니다.

    이제 좌파의 성찰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거짓말이거나 침묵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저를 두고 ‘배신자’라 하기도 합니다.

    과거 소련식, 중국식, 급기야 북한식 사회를 만들려 했다고 왜 이야기를 못합니까?
    그를 위해 모든 청춘을 바쳤다고 왜 이야기를 못합니까?
    그것의 목적은 인권이고 자유이며, 평등이었다고 왜 자신 있게 피력하지 못하냐는 말입니다.
    지금의 소련과 중국,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을 놓고 현재의 생각은 어떻다고 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지금 좌파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침묵하는 이유는 처벌이나 고립 때문이 아닙니다.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겠습니까? 그들의 생각에 채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고의 습관을 이제는 습관적으로 사고하는 까닭입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북한 동포들의 외침을 가혹하게 외면하는 것도 3대 세습에 대해 꿀먹은 벙어리인양 하는 것도 모두 습관적 사고를 성찰하고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합니다.

    안병직 선생님은 “진보진영이 한국현대사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과거 모습을 솔직하게 반성하고 한국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선진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한국민주주의의 기원과 미래」(시대정신, 2011. 5.) ‘증언’편에서 말씀하십니다.

    안 선생님을 6년 뵈니 그이의 진심을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은 좌파의 초기 건강성과 진정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 건강성이 회복되어 대한민국 발전과 북한인권실현에 기여하기를 갈망하고 계십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이번에 결심하시고 세상에 내 놓은 <증언>은 당신의 종아리에 내리치는 회초리입니다. 부디 좌파들이 이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황망하게 몇 자 적습니다.

    <편집자 주>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http://cafe.naver.com/storyk21) 양해 하에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