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적인 결단으로 테러범을 제압한 이스라엘
  • 일반적으로 대테러작전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것이 항공기 납치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대테러작전일 것이다.  마치 영화처럼, 테러범이 납치한 항공기를 되찾고 테러범들을 사살 혹은 체포하며 붙들린 승객들을 무사히 구출하는  멋진 모습을 기대할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항공기 對테러작전은 어떤 것이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항공기 대테러작전은 사베나 항공여객기 납치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 이전에도 테러범들의 항공기 납치사건은 많았다. 하지만 이전의 사건들은 모두 납치범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고 '특공대의 본격적인 구출작전'이 펼쳐진 것은 사베나 항공 여객기 사건이 최초였다.   

  • ▲ 납치의 주역  알리 하산 살라메
    ▲ 납치의 주역 알리 하산 살라메

                                           
    이 사건은 1972년 5월 8일, 벨기에 국영항공사인 사베나 항공 572편이 4명의 '검은 9월단' 테러범들에게 납치되면서 시작 됐다. 비엔나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보잉 707 여객기였는데, 납치된 후 이스라엘 텔 아비브 공항에 강제 착륙 당했다. 

    테러계획의 입안자는 "붉은왕자(RED Princess)"라는 별명을 가진 알리 하산 살라메였고 납치를 주도한 4인의 테러범은 알리 타하가 지휘하고 있었다.

    알리 하산 살라메는 검은 9월단의 리더로서 같은 해 9월에 발생한 뮌헨 올림픽 테러사건의 주모자 중 한명이었다.

    항공기 납치범들은 이스라엘에 수감되어 있는 315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고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비행기와 승객들을 폭약으로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방장관 모세 다얀은 특수부대에 의한 구출작전을 준비했다.

    구출작전 명칭은 "동위원소 작전".

    1972년 5월 9일 오후 4시,   이스라엘 특공대의 구출작전이 전격적으로 개시됐다. 구출부대는 16명의 샤이렛 마트칼(특수부대)  정예대원 들로 구성되었고, 지휘관은 에후드 바락이었다. 

    이 부대 는 영국의 특수 부대인 SAS를 모방하여 창설된 특수부대로 당시 특공대를  지휘한  '바락'은 훗날  이스라엘의 제10대 총리가 됐고, 이스라엘의 9대 총리(1996년~1999년 재임)를 역임한 벤야민 네탄야후도 있었다. 네탄야후는 작전에서 총상을 입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큰 부상은 아니었다.

  • ▲ ⓒ위협에 굴하지 않은 벤야민 네탄야후와 이츠하크 총리
    ▲ ⓒ위협에 굴하지 않은 벤야민 네탄야후와 이츠하크 총리

    작전은 전광석화 같이 시작되었다. 특공대원들은 항공정비사와 적십자 직원으로 위장하였으며, 비행기에 몇가지 정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테러범들을 기만했다. 테러범들이 잠시 방심한 사이 특공대원들은 기민하게 기내로 돌입, 10분간의 총격전 끝에 기체를 완전 장악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테러범 2명이 사살되고 2명이 체포되었으며 승객 3명이 부상을 당했다. 

    작전 중에  부상을 입은 승객들 중 22세의 이스라엘 여성은 치료 중 사망했다.  이 여성은 특공대가 진입해 "승객은 엎드리라"는 특공대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놀라 넋 놓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안타깝게도 기내에 진입한 특공대는 고개를 숙이지 않은 그녀를 테러범으로 착각해 발포했고, 결국 머리에 총알이 적중되었다. 

    하지만 이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테러범의 협박에 절대 굴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전통이 시작 될 수 있었다. 그 명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