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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쓰나미로 드러난 한국의 치부
사상최악의 대재앙을 맞은 이웃 일본의 뉴스를 접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대재앙 못지않게 일본 국민의 행동과 일본 언론의 보도 자세에 충격을 받고 있다.
시시각각 생중계되는 현지 화면에서 쓰나미가 땅 위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생생한 장면은 있었으나 아비규환의 현장은 보이지 않았다. 집과 가족을 잃고 대피소로 피난한 주민들은 애써 울음을 참으며 참혹했던 순간을 담담히 전했다. 생필품을 파는 상점 앞엔 어김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주민들의 줄이 이어졌다. 쓰나미가 휩쓴 이웃 마을의 거리는 교통신호가 평소처럼 지켜졌다. 어디서도 약탈의 현장은 물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진흙에 덮인 집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북받쳐 흐느끼는 정도였다. 수용소의 어린아이까지 의연한 부모를 닮아 보였다.
과연 이 땅에서 저런 대재앙이 닥쳤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일본 언론들의 보도 자세였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NHK를 시청했는데 한결같은 반응이 침착한 보도 분위기에 놀랐다고 했다. 아나운서나 기자들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고 상황을 전하는 표현도 냉정했다. 무슨 일이 터지면 목청을 높이고 흥분하고 자극적인 표현을 총동원하는 우리네 방송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본 방송을 그대로 받아 중계하는 우리 방송들이 더 흥분하고 표현도 더 자극적이었다.
“만약 지금의 쓰나미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닥쳤다면 과연 우리 언론은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슬픔의 재난 속에서 더 아픈 자극적 제목을 찾기 위해 서로 혈안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은 탈북시인 장진성씨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과연 이런 대재앙이 이 땅에서 일어났다면 우리 언론은 어땠을까.
조갑제선생은 24시간 재난 방송중인 NHK를 시청한 뒤 이런 특징을 집어냈다.
1. 진행자들의 옷차림이나 용모가 평범하다.
2. 말을 조용조용하게 한다. 기자들은 사무적으로, 차분하게 말한다.
3. 울부짖는 사람들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映像(영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NHK는 아직 사망자의 유족을 한 번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유족들이 애통해 하는 모습도 일체 보여주지 않는다. 屍身(시신)이나 棺(관)도 보여주지 않았다.
4. 사망자 통계를 보수적으로 잡는다.
5. 피해실태와 정부의 구조 작전은 상세하게 보도한다. 정부의 조치나 발표를 충실하게 전한다.
6. 대처가 늦어지고 있다는 불평이나, 남 탓을 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한국의 공중파는 재난 보도를 할 때 무조건 정부 대처가 엉터리라고 몰고 간다).
7. 차분한 진행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분위기를 만든다. 일본 대지진에 대하여는 KBS가 NHK보다 훨씬 더 흥분하였다. NHK는, 아수라장, 쑥대밭, 유령도시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조갑제 선생은 국내 언론들이 일본 언론의 표현을 넘어 더 과장되고 자극적이란 사실도 구체적 실례를 들어 지적했다.
오죽했으면 재일교민들이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관련한 국내 언론들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보도태도에 “지나치게 공포감을 자극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을까.
해외에서 큰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나타나는 우리 방송의 고질적 보도태도의 하나는 한인 피해유무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현지의 비극과 참상을 전하면서 “한국인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소식을 덧붙여야 직성이 풀리는가보다.
물론 한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고 뉴스거리도 된다.
그러나 수천 수만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상황에서 한인의 생사 확인에 집착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남의 나라 사람들은 얼마든지 죽어도 우리나라 사람만 무사하면 됐다’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에 파견된 정부의 신속대응팀이 현지에 도착해서 우리 국민의 피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니 참 부끄럽다. 일국의 외교부차관이 “센다이지역에 매몰된 300~400구의 시신에 한인이 포함돼있는지 확인 중”이라고 브리핑을 하는 것을 보면 언론이나 정부 관리나 극도의 이기주의에 물든 것 같아 서글프기 짝이 없다.
구조와 시신 발굴에 나선 일본구조대가 일본인 한국인을 구별할 까닭이 없고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를 숨길 이유도 없다. 옆에서 지켜보고 협조에 진심으로 응하는 것이 대재앙을 당한 일본을 진정 도와주는 일이다
독선에 찬 일부 종교인이 일본의 대지진 내습을 두고 “일본국민이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간데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하더라도 언론만은 진실을 보고 전해야 한다.
이웃나라가 희생자가 수만 명이 될지, 수십만이 될지 모를 대재앙을 맞고 있는 때에 ‘한류 열풍 타격 우려’운운하는 방송이 있다는 것은 수치다.
(본사부사장/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