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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이승만을 모르는 부끄러움을 고백합니다
미국이 이승만 제거계획을 세워두었을 만큼 이승만을 싫어했는지 몰랐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이승만은 의심의 여지없이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도 이승만을 좋아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승만이 왜 고집스럽게 공산주의를 반대했는지 잘 몰랐습니다. 왜 미국과 소련이 강요한 ‘남북 좌우합작 정부’ 수립에 목숨을 걸고 반대했는지 몰랐습니다. 권력을 함께 나누지 않으려는 정치적 야망 탓이 아닐까 생각하는 정도였습니다.
동족 간의 살육전을 그만 두자는 휴전을 결사반대한 이유도 쉽게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휴전이 한반도를 완전히 두 동강 내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불행한 상태가 반세기 넘게 지속되는 것을 보고는 이승만의 깊은 뜻을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열혈 운동권 청년에서 애국지사, 국가 지도자로 이어진 이승만의 인생역정이 수백편의 드라마나 오페라 소재가 될 정도로 극적이고 파란만장했다는 것도 놀라왔고, 그를 지탱케 한 정신이 신앙과 같은 ‘자유민주’ ‘자주독립’이라는 데 더욱 놀랐습니다.
정치인들이 이승만을 ‘독재자’로 못 박아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이승만에게 찍힌 독재자란 낙인은 당시 그와 대립했던 정당 정치인이나, 후세 정치인들이 사용하기 훨씬 전, 상해 임시정부 시절 공산세력과 미국 소련 북한 미국과 세계 언론에 의해 찍혀 있었음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3․15 부정선거로 폭발한 4․19 학생의거로 권자에 연연하지 않고 물러난 이승만이 장개석 대만총통에게 보낸 편지에서 “불의를 참지 못하는 순수하고 열렬한 애국청년들이 있어 대한민국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백했다는 사실 또한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이승만에게 붙은 독재자란, 그를 공격하고 몰아내기 위해, 혹은 그를 끌어내림으로서 자신의 위상과 입지를 합리화하고 강화하려는 정치세력들이 동원한 수식어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승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나 교사나 교수를 통해, 단편적 귀동냥을 통해 주입된 지식이 거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론인 생활 30여년에, 60이 넘은 나이에 이승만에 대해 아는 바가 이 정도라는 데 부끄럽기 그지없으나 뒤늦게나마 이승만을 바로 아는 기회를 만나 무지를 고백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제가 이럴진대 요즘 젊은 세대나, 우중(愚衆)이 갖고 있는 이승만에 대한 인식이 어떠할 지는 물으나 마나일 것입니다.
선구자적 혜안으로 역사를 읽어내며 불굴의 의지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이 국가에 의해 부정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버림받은 현실은 국가적의 수치이고 국민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이승만이 구제역 걸린 가축처럼 무자비하게 매몰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건국 아버지를 버린 나라, 이 지구상에 한국 말고 어디 있습니까.
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승만 연구소’ 창립식 및 제1회 ‘이승만 포럼’행사에 참석해 개인적으로 맛본 자괴감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행사에 참석한 많은 분들의 모습은 희망을 주었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 같은 맹탕만 있는 게 아니구나, 저런 분들이 있어 역사가 다시 바로 서고 국가가 제대로 굴러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도, 얻는 것 없어도 역사의 진실을 바로 알고 알리려고 나선 저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란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가 이승만을 포기하고, 반대파들이 이승만을 부정하고, 몽매한 국민이 이승만을 외면해도 역사의 진실을 온전히 보듬어 안고 후세에게 넘겨주려는 분들이 있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