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트리폴리에 있다. `길 잃은 개들(stray dogs.서방 기자들을 지칭)'의 방송 채널을 믿지 마라."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68)가 22일 새벽(현지 시각) 현지 국영TV에 모습을 나타내며 서방 언론에서 잇따라 제기한 자신의 베네수엘라 망명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수척하고 지친 모습의 카다피는 베이지색 차량의 조수석에 앉아 차 문밖으로 회색 우산을 직접 펼쳐든 채 방송국 기자가 내민 소형 마이크 앞에서 "오늘 밤 나는 그린(녹색) 광장에서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길 원했는데, 비가 내린다"고 입을 뗐다.

    트리폴리 중심에 있는 그린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주고받고 싶은데, 비가 내려서 못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귀 덮개가 늘어진 방한모자를 눈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눌러쓴 그가 우산을 들고 TV에 출연한 것은 자신이 비가 내린 트리폴리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입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검은색 점퍼 차림의 카다피는 서방 언론의 기자들을 `길 잃은 개'에 비유하며 자신은 `사악한' 외신의 거짓 보도와 달리, 베네수엘라가 아닌 트리폴리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는 듯했고, 인터뷰 시간도 20초를 넘지 않을 정도로 짧아 TV에서 장광설을 늘어놓기를 즐겼던 예전의 모습과 대비됐다.

    카다피의 인터뷰는 밤에 진행된 듯 배경은 어두웠고, 그가 탄 차량의 운전석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고 기괴한 분위기였다.

    카다피는 과거에는 비록 횡설수설하기는 했지만, 과도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발언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었었다.

    실제로 그는 2009년에 카타르에서 열린 아랍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을 "영국산 제품이자 미국의 협력자"라고 몰아세워 장내를 술렁이게 한 뒤 "나는 국제적인 지도자이자 아랍 지도자 중 중진이며, 아프리카에서는 왕 중의 왕일 뿐 아니라 무슬림의 이맘(종교지도자)"이라고 자신을 치켜세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