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統獨 이전 “통일 가능할 것”이란 대답은 서독인 3% 
    그러나 콜(Helmut Kohl) 총리는 통일의 의지를 꺽지 않았다.

     역사는 인간의 豫測(예측)대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독일 통일 이전 통일을 내다본 독일인은 많지 않았다. 1951년~1967년까지는 31~66%의 서독인들이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답했지만 1960년대 말부터는 10%대로 계속 낮아지다가 통일 직전인 1987년 3%로 떨어졌다. (출처 : 동서독 통합 20주년 ‘독일통일바로알기’ 평화문제연구소 刊)
    대중의 여론을 뛰어넘는 결단은 지도자로부터 나왔다. 右派(우파) 출신인 기민당의 콜(Helmut Kohl 1982∼1990년 재임) 총리는 통일의 의지를 꺽지 않았다. 1987년 9월 호네커(E. Honecker) 동독 서기장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단호한 어조로 “서독인들은 통일에 대한 의지를 항상 가지고 있으며 결코 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의 切迫性(절박성)은 한국이 독일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다. 우리의 평화와 번영, 북한주민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북한정권의 평화적 해체를 통한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라는 헌법의 원칙에 목소리를 높이는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이것이 북한의 포격 이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