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④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될거야.」
    포크를 내려놓은 윌슨이 말했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6월 30일, 나는 시거트 별장에서 윌슨과 가족, 측근들과 함께 만찬에 참석해 있다. 윌슨의 시선이 장방형 테이블을 훑고 내려오더니 나에게서 멈췄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

    나에게 말한 것 같았지만 주위에서 한마디씩 했다.
    「될겁니다, 윌슨.」
    「브라보! 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
    「대통령을 위하여!」

    나는 입을 다문 채 끼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만찬장에 초대받은 값어치는 계산하고 있었다.

    만일 윌슨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이 만찬에 참석한 측근들은 정부 요직에 등용될 것이었다. 국무장관, 국방장관 예정자가 이 중에 끼어있을 지도 모른다. 이들의 말 한마디가 약소국의 이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때 윌슨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옮겨졌다.
    「리, 조국으로 돌아가겠나?」
    「아닙니다. 각하.」
    그러자 윌슨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 주위에선 자네가 정부 관리로 기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네. 물론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겠고 그 다음에는 자네가 미국 시민이 되어야겠지만 말야.」
    주위가 다시 조용해진 것은 그 말에 진실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잔을 쥔 윌슨이 나에게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 리?」
    「예, 각하.」

    정색한 내가 대답하자 주위의 인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그때 윌슨이 다시 말했다.
    「난 두가지 경우를 물었어. 어떤 가능성인지 말하게. 리.」
    「각하께서는 대통령이 되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자 주위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몇 명은 가볍게 박수까지 쳤다.

    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미국 시민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랑스런 미국 정부의 요직에 기용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주위에서 낮은 탄성이 일어났다. 그러나 모두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있다.

    윌슨이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조선 왕위를 버리고 미국의 월급쟁이 관리가 되다니. 그건 모욕이지.」
    그러자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윌슨이 물잔을 건배하는 듯이 들었다.
    「자, 미국과 조선의 미래를 위하여.」
    「브라보!」

    주위 인사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앞에 놓인 잔들을 들어올렸다. 나도 물잔을 들었지만 가슴 속에 찬바람이 지나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은 물론이고 윌슨도 조선의 장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현 대통령 루즈벨트의 지시를 받고 가쓰라와 비밀 회담을 해서 필리핀과 조선을 각각 미국과 일본의 관리 하에 두자고 서명을 한 인간이다. 전(前) 대통령 루즈벨트는 말할 것도 없다. 윌슨이 새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미국의 국익에 벗어난 행동을 하겠는가?

    내 시선이 윌슨의 옆자리에 앉은 제시에게로 옮겨졌다. 제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 시선을 받는다. 분홍색 드레스 차림의 제시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나는 제시의 웃음을 받으면서 이를 악물었다.

    윌슨 부녀의 호의는 동정심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늘 밤 메리한테 빵을 얻으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찾아와 매달릴 것이다.

    나는 나라 없는 조선인의 대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