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22)

     2월 초의 어느 날 강의를 마친 내가 교장실로 들어섰을 때 이상재가 따라 들어왔다. 얼굴 표정이 굳다.

    「이보게, 우남. 윤회장이 체포되었어.」
    소파에 앉으면서 이상재가 말했으므로 나는 시선만 주었다.

    윤회장이 누군지는 안다. 바로 윤치오다. 신민회 회장이어서 윤회장으로 불린다. 그리고 윤치오는 YMCA 부회장이기도 한 것이다. 조선 땅의 YMCA를 총괄하는 조선인의 대표 역할이다.

    내가 겨우 입을 열고 물었다.
    「독립운동에 연루된 것입니까?」
    「그것 아니면 뭐겠나?」
    그리고는 이상재가 길게 숨을 뱉는다.

    이른바 안악사건, 105인 사건 등을 조작한 총독부는 불온세력의 뿌리를 뽑겠다는 의도로 의심이 가는 인사들은 모조리 체포했다. 105인 사건은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암살모의를 했다는 혐의로 6백여명을 체포하였다가 105명을 구속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내가 그동안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YMCA 국제위원회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뉴욕의 국제위원회 소속이어서 미국 정부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내가 귀국할 때 이것을 보호막으로 삼았기는 했다.

    이상재가 문 밖을 살피는 시늉을 하더니 말을 잇는다.
    「윤회장까지 잡아가는 상황이니 이젠 자네가 위험해.」
    나는 시선을 내렸다.

    쫓기다가 앞이 막힌 골목길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우남, 간도로 가게.」

    마침내 이상재가 굳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방법밖에 없네. 윤회장 다음은 바로 그대야.」
    「결국은 이렇게 쫓겨나는군요.」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 내가 머리를 들고 이상재를 보았다.

    나보다 25세나 연상인 이상재는 올해로 63세가 되었다. 주미공사관 서기도 지냈던 이 늙은 애국자는 개화운동을 할 때 독립협회 부회장으로 나를 이끌어주기도 했다.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작별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어깨를 늘어뜨린 이상재가 길게 숨을 뱉는다.
    「어른께 내 안부를 전해 주게나.」

    그 말만 들었어도 내 가슴이 미어졌다. 아버지는 올해로 76세가 되신다. 이제 떠나면 아버지는 다시 뵐 수 있을 것인가?

    그날 저녁에 나는 동대문 밖 창신동의 본가로 들어섰다. 낙산 중턱의 성벽 밑에 자리 잡은 세 칸짜리 집안은 조용했다. 안방의 불이 꺼졌으므로 헛기침을 했더니 건넌방 문이 열리면서 아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후 8시쯤 되었다. 아버지는 주무시는 것 같았으므로 내가 건넌방에 들어가 앉자 아내는 윗목에 서서 잠자코 시선을 준다.

    아내와 나는 동갑이다. 15세때 결혼해서 이제 결혼생활 23년이 되었다.
    단 하나의 소생이었던 태산이를 미국에서 잃고 아내도 정신을 빼놓은 허깨비처럼 되었을 것이다.

    내가 입을 열었다.
    「당신도 서른여덟이오. 아직 늙은 나이는 아니오.」

    방안에는 호롱불을 켜서 기름 냄새가 번져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이혼합시다. 나는 떠나야 될 것 같소.」
    그러자 아내의 눈이 번들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떠나다니? 어떤 년한테 간다는 거요?」
    아내의 목소리가 방을, 마당까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다시 아내의 외침이 이어졌다.
    「못가! 당신 좋은 일 못시켜 주겠어! 지금까지 이 고생을 시켜놓고 뭐? 외국으로 떠난다고? 그래서 딴 년하고 잘 살겠다고? 차라리 나를 죽이고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