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⑪  

     1910년 12월에 안중근의 사촌동생 안명근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암살하기 위하여 군자금을 모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내막은 황해도 신천(信川)에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이 사건으로 160여명이 체포되었다. 그러나 총독부는 그것으로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경무총감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가 이 기회에 반일분자의 뿌리를 뽑는다는 소문이 장 안에 퍼져있는 것이다.

    기석이 다녀간 다음날 오후, 강의를 마친 내가 교무실로 들어섰더니 소파에 앉아있던 두 사내가 머리를 들었다. 이구치 대좌와 통역이다. 교무실 안에는 항상 두어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오늘은 텅 비었다. 이구치 때문일 것이다. 오늘 이구치는 군복 차림에 허리에는 칼까지 찼다.

    「교장선생을 뵈러 왔습니다.」
    이구치가 낮게 말했지만 통역의 목소리는 컸다.

    30대쯤의 통역을 본 나는 기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10여년 전, 이시다 주우로(石田十郎)의 통역으로 처음 만난 이후로 나하고 긴 인연을 맺고 있는 기석. 그는 독립군이 되어있는 박무익의 친구이며 동시에 친일파이기도 하다.

    그때 이구치의 말을 통역이 잇는다.
    「이번 총독 암살 미수 사건으로 잡힌 놈 중 하나가 교장선생이 군자금을 지원했다고 자백을 했소. 그래서 바로 체포하려다가 내가 먼저 찾아온 것이오.」

    그러더니 이구치가 똑바로 나를 쏘아보았다. 위협적인 시선이다.
    「이박사, 당신이 YMCA 지붕 밑에 숨어있다고 안심한다면 큰 오산을 한거요. 미국 정부가 당신을 구해줄 것 같소? 미국에서 상황을 파악했을 것 같은데.」
    그리고는 이구치가 입술 끝을 비틀고 웃었다.

    맞는 말이다.
    미국은 일본의 조선합병을 방관 내지는 묵인했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영국도 일본과 동맹을 맺고 선심 쓰듯이 조선을 일본령으로 묵인해 주었다. 루즈벨트의 얼굴을 떠올린 내가 입을 열었다.

    「좋소. 증거가 있다면 나를 잡아 가시오. 내가 귀국했을 때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통역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나도 이구치와 비슷한 웃음을 짓고 말을 이었다.
    「어디, 일본의 감옥은 어떤지 가 봅시다. 대한제국 시대의 한성감옥서 보다는 많이 개화 되었겠지요?」

    그때 통역의 말을 들은 이구치가 쓴웃음을 지었다.
    「전혀 그런 일이 없다니. 증인과 대조를 시켜야겠구만. 나는 이박사가 먼저 자백해주기를 바랐소. 그럼 선처를 해줄 용의도 있소.」

    나는 내 말과 이구치의 대답이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통역의 얼굴을 보았더니 내 시선을 받자 눈을 깜박인다. 눈짓을 하는 것이다.

    다시 이구치가 말을 이었고 통역이 말했다.
    「제가 말을 조금 고쳤습니다. 증거는 없으니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 하십시오.」
    그 순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 내가 이구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고맙소. 신세를 졌소. 하마터면 흥분해서 싸울 뻔 했소.」

    통역이 내 말을 이구치에게 전하더니 곧 이구치의 대답을 옮긴다.
    「다시 오겠다고 합니다. 증거를 갖고 오겠다지만 엄포올시다. 하지만 흥분하지 말고 보내시지요.」
    그 말을 들은 내가 결연한 표정을 짓고 머리를 끄덕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는데 아마 희망일 것이다.
    이렇게 동포들이 돕는다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