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현은 남자들을 부르지 않았으므로 둘은 빠른 속도로 위스키를 마셨다.
서로 말도 안했지만 윤대현은 술맛이 났고 눈치를 보았더니 고수연도 술이 땡기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친한척 상대방의 잔에 술을 채워주지는 않았다. 혼자 따라 마신 것이다.방안의 정적이 좀 거슬렸는지 윤대현이 처음부터 앞쪽 노래방 화면을 켜 놓아서 계속해서 매들리 음악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림도 볼만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40도짜리 위스키를 반병쯤 마셨을 때였다. 둘이 거의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양을 마셨으니까 각각 대여섯잔씩은 마셨다.
고수연이 머리를 들고 윤대현에게 물었다.
「그, 애기 말야.」애기인지 이야기인지 구분이 안되어서 윤대현은 눈만 껌벅였다.
고수연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윤대현을 보았다.
「그, 애기. 외국으로 입양 보낼꺼야?」그러자 윤대현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되물었다.
「왜? 그럼 니가 키워줄래?」
「내가 미친년이니?」바락 소리친 고수연이 윤대현을 노려보았다.
「양육비를 주든지 결혼을 하든지 해야 될 것 아냐? 남자가 지가 저질러 논 일은 책임을 져야지.」
「돈 줬어.」정색한 윤대현이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걱정마라.」
「참, 별꼴야. 스물넷에 애기 아빠라니. 쉰살쯤 되어선 손자 보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그러자 한모금에 술을 삼킨 고수연이 지그시 윤대현을 보았다.
「아버지도 아셔?」
「알았다간 맞아죽게?」
「그대로 놔 둘거야? 그 모자 말야.」
「그럼 어떻게 하냐?」
「결혼하지 그래?」
「내가 미쳤냐?」
「애기 만들 때는 안미쳤니?」
「이게 슬슬 말 놓고 있어. 죽을래?」
하고 윤대현이 눈을 부릅떴다가 제 잔에 술을 따르더니 훌떡 삼켰다.그때 다시 고수연이 묻는다.
「애기 남자야? 여자야?」
「여자.」
「이름이 뭔데?」
「순미.」
「유순미?」
「아니, 김순미야. 지 엄마 성으로.」
「나쁜놈.」
「이 기집애가 정말.」그러자 고수연이 길게 숨을 뱉았다.
「증말 요즘 제대로 된 남자새끼가 없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몰라.」코웃음을 친 윤대현이 잔에 술을 채웠고 고수연의 말이 이어졌다.
「어른들도 그래. 다 지 계산만 하지 싸질러만 놓고 자식 입장은 생각도 안해.」
「그러게 말이다.」
「내가 이런 놈하고 티각태각 하고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을거야.」
「맞아.」
「드런놈.」
「술 한병 더 마실래?」거의 비워진 술병을 들고 묻자 고수연이 눈을 흘겼다.
「그럼 한병 갖고 되겠니? 등신아.」
「너, 그러다가 순미 엄마처럼 깜박하는 사이에 애기 낳을 수가 있어.」
「머?」무슨 말인지 금방 해석을 못한 고수연이 눈만 껌벅였을 때 윤대현이 벨을 눌렀다.
「아니, 이 나쁜놈이.」
뒤늦게 말뜻을 안 고수연이 술잔을 던질 듯이 쥐었을 때 웨이터가 들어왔다.
그렇게 「돈주앙」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재혼'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