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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강서경찰서는 “화곡동 소재 ○○중학교 교사 A(35)씨가 자신이 담임인 반의 학생 B(15) 군과 성관계를 한 사실이 학부모에게 발각되어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 측은 “성관계에 대한 대가가 없는데다 B군이 만13세를 넘었고, A씨와 B군이 서로 합의 하에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유사한 사례, 지난 5월에도 발생
지난 9월 18일 본지는 경북 지역에서 일어난 여중생 사건을 다룬 바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C(15)양은 선천적인 청각장애로 인해 지적장애까지 생기게 됐다. 현재 C양의 정신연령은 8세 수준. 그나마 어머니가 3살 때부터 특수교육을 시킨 끝에 일반 중학교에 입학했다. 이런 강 양은 뒤늦게 학교에 입학한 어머니가 기숙사 생활을 한 때문에 외롭게 지냈다. 어머니가 없을 때 강 양은 혼자서 게임이나 채팅을 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지난 5월 하순 경 C양은 집에 혼자 있으면서 한 채팅 사이트에 접속했다. 여기서 ‘○○○에 사는 여중생-여고생 구합니다’라는 채팅방 제목을 클릭했다. 채팅방에는 그 지역에 사는 대학생 M 씨(24, 공무원 지망생)가 있었다. 대학생 M 씨는 C양의 휴대전화 번호를 얻은 뒤 150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끈질기게 유혹해 자신의 자취방으로 끌어 들인 뒤 성관계를 맺었다. M 씨는 이후에도 C양에게 연락했고, 성관계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C양은 자신을 챙겨주는 M씨가 생각나 한 차례 더 그의 자취방을 찾았다.
하지만 이후 C양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혼자 멍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친구들에게 임신이나 성관계가 뭔지를 묻는 일도 있었다. 이런 C양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어머니는 딸을 다그쳤다. 결국 C양의 휴대전화 기록으로 M 씨의 존재를 알게 된 C양의 어머니는 M 씨에게 연락했고, M 씨는 그 자리에서 사죄를 했다.
하지만 15살에 불과한데다 지적 장애를 가진 미성년자를 유혹해 성관계를 가진 건 상식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일. C양의 어머니는 M 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미성년자 보호법에 따라 M 씨가 처벌받을 거라 생각했던 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경찰 측은 C양이 첫 성관계 이후 M 씨와 통화를 하고 찾아간 것, C양이 또래 친구들에게 성적인 문제에 대해 상의한 점 등을 이유로 서로 합의 하에 관계를 맺은 것으로 간주했다. 여기다 성폭행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부족한 점 등으로 인해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만 13세’만 넘기면 ‘돈 안 주고 합의해서 한 성관계는 무조건 OK?’
두 사건 모두 ‘무혐의’로 결론이 난 이유는 현행법 때문이다. 현재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문제는 ‘아동보호법’과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아동’은 만13세 이하의 청소년으로 이들과 성관계를 맺으면 이유를 막론하고 처벌을 받게 된다. 반면 만14세 초과 만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특별법’의 보호 대상이다.
문제는 이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특별법’이 성매매, 거짓말이나 협박에 의해 성관계를 한 경우나 ‘그루밍 처벌법’이라고 하여 채팅 등을 통해 금품 등을 제공한 뒤 청소년들을 성매매로 유인하는 경우에만 처벌받는다는 점. 따라서 청소년이 ‘좋아해서’ 상대방과의 합의로 성관계를 맺었을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경우 성(性)에 대한 관념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상태다. 남자 청소년들의 경우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상황이라 쉽게 유혹에 빠질 수 있고 여자 청소년들은 동경과 사랑을 착각하기 쉬운 정서 상태다. 이런 청소년들을 성관계 대상으로 노리는 성인이 온갖 노력을 다할 경우 청소년 대부분은 스스로가 ‘좋아해서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서방국가에선 무조건 처벌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납치와 성폭력이 당연시되는 일부 이슬람 국가나 무정부 상태인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방국가에서는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무조건 처벌 받는다. 실제 우리가 해외토픽을 통해 종종 접하는 교사와 미성년자 제자 간의 성관계 사건 기사에 등장한 교사들은 모두 징역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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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6월 14살 난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체포된 美여교사. 미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은 청소년과의 성관계를 엄벌하고 있다.ⓒ
그들이 치른 대가도 상당하다. 美테네시州의 한 여교사는 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은 후에도 다시 제자와 성관계를 맺다 집행유예가 취소되고 징역 8년 형이 선고될 위기에 처했다. 美미주리州의 한 여교사도 13살 난 제자와 성관계를 맺었다가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英그레이터멘체스터州의 한 여교사도 15세 소년과 성관계를 맺었다가 발각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호주의 한 여교사도 15살 난 제자와 성관계를 맺었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남교사와 여제자? 합의하면 처벌 없어
이처럼 해외에서는 미성년자와의 성관계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에 논란이 된 여교사와 제자 간의 성관계는 물론 남자 교사와 여제자 간의 성관계도 '합의했다면' 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 대신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해당학교에서 파면 당하는 게 전부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제자와의 성관계에 대한 교사의 생각이다. 이와 관련된 판례가 있어 소개한다.
2006년 11월 8일 서울행정법원은 특별한 판결을 내렸다. 18년 간 교직에 몸담으며 표창까지 받았던 교사 D씨는 여중생 제자 E양(14)과 세 차례 성관계를 맺었다 적발돼 학교에서 해임 당했다. 이에 D씨는 ‘제자가 먼저 유혹했다. 그러므로 파면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제자의 거짓말과 유혹에 비위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제자가 인격적으로 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는 교사가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것은 그 비위의 정도가 가볍지 않다”며 “파면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같은 판결이 4년 전에 나왔음에도 현행법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 논란이 된 유부녀 여교사와 중학생 제자 간의 성관계 사례가 알려지면 악용할 인간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많다. 서울행정법원의 판례에서 보듯 ‘청소년이 인격적으로 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는 교사’가 단지 성관계에 대가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 되는 게 ‘현행법’이라면 일부 ‘나쁜 어른’들이 만14~18세인 청소년들을 유혹한 뒤 대가성만 없으면 아무리 성관계를 맺어도 문제가 안 된다고 풀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회와 정부 고위층은 물론 사법당국, 치안담당자들은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 당황할 뿐 ‘법의 빈 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 있어 유사한 일들이 증가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