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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더 이상 젊다고 만은 할 수 없는 나이 그래서 꿈만 좇아갈 순 없는 나이, 그렇다고 그것을 접기엔 너무나 아쉬운 나이.
◆서른이란 나이엔 이렇게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그리고 여기 한 남자, 존(강필석.신성록 더블캐스팅)은 자신의 서른번째 생일을 1주일 앞두고 시도때도 없이 머리 속에서 '째깍째깍'(Tick Tick) 돌아가는 시계초침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있다.
적어도 그에겐 서른이란 나이는 긍정보다 울컥하는 서러움이 밀려오는 '절망'에 가깝다. 그리고 그 초침은 언제 '쾅!'(Boom)하고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존은 뉴욕 맨하탄 다운타운에 살고 있는 무명 뮤지컬 작곡가다. 그러나 그에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흡사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라는 한 영화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삶이다. 서른살 생일을 앞두고 히트작 하나 내지 못하고 있는 그는 낮에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도 '언젠간 멋진 작품을 내겠다'는 의지로 작품 만들기에 몰두한다.
이상은 그럴듯 해보이지만 그 앞에 놓인건 차가운 현실이다. 여자친구인 수잔(윤공주)은 복잡한 맨하탄을 떠나 가정을 꾸리기 원하고, 현실과 타협해 비즈니스맨으로 성공한 친구 마이클(이주광)의 멋진 아파트와 자동차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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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에 서른살이라니 제기랄 어떡하나"
◆째깍째깍 째깍째깍... 듣는 이의 심장까지 조여오는 저 소리. 이 불편한 기계음을 배경으로 존이 독백한다. "한 인간의 불안과 초조가 쌓여가는 소리입니다. 제가… 그 인간입니다"
뮤지컬 첫 OST중 '30/90'은 90년에 30살이 되는 존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90년에 서른이라니 제기랄 어떡하나/ 어떡하나 어떡하나"
이 곡에서 관객은 불완전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같이 경험한다.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나이가 '성인이라는 자격이 부여' 되는 시기라면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나이는 '진정한 성인이 되는 관문'의 시기다.
안정, 기반, 미래를 향한 최소한의 초석이라도 닦아 놓았어야 할 나이. 세상이 꿈과 도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 꿈을 계속 가져갈 것인가, 버릴 것인가의 경계에 서있는 서른의 자아에겐 삶은 어렵고 힘들다. 뭔가 완전치 않은 숫자 '29'라는 불안함이 주는 '숫자의 심리'도 불안감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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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틱틱붐 공연 일부 ⓒ연합뉴스
평생 하고 싶은 꿈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밀려오는 두려움은 점점 존을 옥죈다. 이런 심경을 토로하듯 존은 "서른살이면 애들도 한둘 있고 어느정도 이름도 알려졌어야 할텐데"라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은 종종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길 원한다. 이런 평가는 으레 부나 명성, 성공 등 객관적 수치로 평가되는데 이 조차도 타자에 의한 잣대다. 여기서 '나'는 배제되거나 작아진다. 주인공인 존 또한 주위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해 계속해서 현실과의 갈등상황에 놓인다.
작품은 특히 뮤지컬 '렌트'로 국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극작가 조나단 라슨의 드라마틱한 삶을 담은 유작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관객에게 더욱 사실적으로 고민과 방황을 느끼게 한다.
"당신의 서른살은 안녕하십니까?"
◆엔딩곡 'Louder than words' 중 "왜 우린 모험을 하나/ 왜 편한 삶이 기다리는데 왜 우린 힘든지 알면서도 자신의 길을 고집하나/ 선택해봐 어떻게 살지 대답해/ 보여줘 내게 네 생각을 보여줘 너의생각"에서 관객은 어렴풋이 답을 발견해낸다.
존이 강박적으로 들리던 째깍째깍하는 초침 소리를 잠재울 수 있던 것은 성공에 대한 예감이나 타인에 의한 잣대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존의 30번째 생일날. 그가 피아노 옆으로 가 자신의 생일축하 노래를 연주하자 그를 괴롭히던 시계 초침 소리는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게 된다. 마치 밤새 폭풍우 세차게 치던 무서운 바다가 새벽녘이 돼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롭게 일렁이듯....
혹자는 모든게 명쾌하게 정돈된 줄만 알았던 서른에도 여전히 현실은 벅차다고 한다. 그래도 관객들은 혹독한 서른 신고식을 끝낸 존의 세상을 향한 도전은 진행형이 될 것이란 걸 예상한다. 그것이 결국 현실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이십대의 끄트머리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지금 당신의 시계 초침은 계속 째깍째깍 대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쾅하고 터졌을까. 아니, 아예 고장나 초침이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닌지...
◆작품은 2001년 한국 초연 이후 이번이 5번째 공연이다. '남자의 자격'으로 유명세를 탄 음악감독 박칼린이 수퍼바이저를 맡았고, 각종 드라마에서 인지도를 쌓은 신성록이 출연해 젊은 층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총 3명의 배우가 등장해 1인 10역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치며 종횡무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몸놀림에 객석에선 웃음과 환호가 터진다.
다만 장소가 협소한 탓인지 음향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배우들의 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 또 주연을 맡은 신성록은 공연 중간중간 관객석에서 물을 마시거나 관객에게 너스레를 떠는데 자칫 뮤지컬 내공없는 개인기에 기댄 애드립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나마 윤공주와 이주광의 맛깔나는 연기가 주연의 부족함을 보완해준다는 점이 다행이다.
제작 신시컴퍼니. 2010년 11월7일까지 공연, 4~5만원 (공연문의 1544-15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