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오후에 김동수는 다시 정수민의 전화를 받았다.

    「오빠, 바빠요?」
    하고 정수민이 물은 순간 김동수의 머릿속에서 계산기 버튼 누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왜? 무엇을? 어떻게? 물론 숫자 계산은 아니지만 앞뒤 좌우를 재느라 김동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오전에 최용기한테서 들은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사회생활에 대한 강좌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이윽고 김동수가 대답했다.
    「아니, 별로.」

    그리고 둘이 상계동의 곱창 식당에서 마주 앉은 것은 오후 8시경이다.
    오늘 정수민은 그 S·F 모자를 벗고 머리를 드러냈는데 파마한 머리가 풍성하게 어깨 위로 늘어졌다.
    캐주얼 셔츠에 바지 차림이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다.

    곱창 안주에 소주를 마시기로 합의한 후에 김동수가 지그시 정수민을 보았다.
    「인간사회는 서로 이용하는 관계라고 배웠어. 실제로도 그렇게 겪어왔고.」
    잠깐 말을 그친 김동수가 쓴웃음을 짓는다.
    「내 이용가치는 뭔지 알겠어. 근데 넌 나한테 뭘 내놓을래?」
    「오빠가 필요한 것 말해봐.」

    놀라지도 않고 정수민이 바로 그렇게 대답하는 바람에 김동수는 입맛을 다셨다. 정수민도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내놓을게 뭔데? 내가 그것부터 알아야되지 않겠어?」
    「뻔하지 뭐.」

    정색한 정수민이 손가락 두 개를 폈는데 꼭 V자 같았다. 뭐가 빅토리야?

    김동수의 시선을 받은 정수민이 말을 잇는다.
    「두가지, 돈하고 몸.」

    순간 김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역시 그것 외에는 없다.

    그때 정수민이 물었다.
    「오빤 어떤거 원해?」
    「둘 다.」
    「좋아. 다 줄게.」

    곱창과 술이 날라져 왔지만 정수민은 종업원이 그릇을 내려놓는 중에도 말을 잇는다.
    「철저히 기브 앤 테이크로 해. 미리 선금 받는 거 없기. 떼어먹으면 그만이니까 말야. 안그래?」
    「그렇긴 하네.」
    「그럼 먼저 오빠가 내 놓아 봐.」

    종업원 아줌마가 힐끗거리며 떠났을 때 김동수가 심호흡을 하고나서 대답했다.
    「회사에서 구입하는 물건에 네 자금도 끼워줄게. 회사 물건이라 안전해.」
    「자금은 얼마나 준비해야돼?」
    「천만원 정도.」
    「마진은 얼마나 남는데?」
    「두 배 정도.」

    머리를 끄덕인 정수민이 국자로 곱창 내비를 젓다가 불쑥 물었다.
    「마진중에서 내가 얼마 떼주면 돼?」
    「50%」
    「30%로 해.」
    「그럼 몸 받고 30%로 하지.」
    그러자 정수민이 빙긋 웃었다.
    「좋아. 합의 한거다?」
    김동수도 술잔에 소주를 따르면서 따라 웃었다.

    정수민을 시계 사업에 참여시킬 작정인 것이다. 이제 정수민의 자본금 1천만원을 보태면 자신의 자본금은 2천만원이 된다. 그럼 마진이 일억이다. 직접 뛰는 위험 부담까지 안는 마당에 자본금 1천만원으로 5천만 먹기는 억울하다. 5천 자본금을 이쪽이 2천, 박미향 3천으로 조정하고 마진도 같은 비율로 먹는 것이다. 물론 일 끝나고 정수민한테는 마진 2천만 주면 된다.

    술잔을 든 김동수가 지그시 정수민을 보았다.
    「어때? 선금이 아니라 계약금을 오늘 받으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