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에드워즈 박사, 종교계 비난 뚫고 20년 집념 성공불임부부의 구세주 '살아있는 전설'로 전세계의 추앙 받아
  •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이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에게 돌아간 것은 당시 전 세계 수많은 불임여성들에게 출산의 희망을 불어넣은 공로 때문으로 분석된다.

    에드워즈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78년 난관이 없어 자연 임신을 할 수 없었던 부부를 대상으로 시험관 수정(IVF)을 처음으로 시도,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루이스 브라운이다.

    당시 에드워즈 박사와 페트릭 렙토 박사는 브라운 엄마의 난소에서 꺼낸 성숙한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를 작은 시험관 속에서 인공 수정시켰고, 48시간 후 이 인공수정 배아를 엄마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브라운은 분만 예정일을 3주 앞두고 제왕절개를 통해 건강한 아기로 태어났다.

    이 과정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사실 에드워드가 인간의 체외수정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60년부터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난자의 배란과 수정란의 착상에 관여하는 호르몬들이 차례차례 발견되고 그 역할이 밝혀질 때까지 20년 동안 지속된 그의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끈기 있게 실험을 계속해 시험관 출산의 장을 연 것이다.

    이 같은 인공수정에 의한 출산은 당시 종교계와 윤리학자로부터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후에도 인공수정 반대론자들은 아이가 커가면서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굽히지 않았지만, 브라운은 2004년 결혼 후 자연출산을 통해 아들을 낳고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안전하다는 사실이 브라운에 의해 입증된 셈이다.

    이런 업적 때문에 에드워즈 박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불임을 전공한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생식의학의 살아있는 전설'로 꼽힌다.

    또한 에드워드 박사가 있는 캠브리지의 번홀 클리닉은 체외 수정 분야의 전 세계 생식의학을 전공하는 의사들에게 성지 같은 곳이 됐다.

    물론 에드워드 박사의 첫 시험관 아기 탄생이 이후 시험관 아기 시술법이 자리 잡기 까지는 약 10여년이 걸렸다.

    이 시술법은 1980년대 들어 대폭 발전했는데 미국 노폭 버지니아의 하워드 존스ㆍ조지아나 존스 부부가 개발한 과배란 유도방법 덕분이었다. 이 기술을 통해 의사들은 난자를 얻기 쉬워짐으로써 시험관 아기 프로그램이 보편화됐다.

    이런 추세 속에 국내에서도 1985년 10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팀이 국내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브라운 탄생 이후 7년만이었다.

    문신용 교수는 "지금처럼 시험관 아기 시술이 보편화 된 것은 에드워드 박사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의 공로로 볼 때 노벨상을 수상할만하다"고 평가했다.

    로버트 에드워드 박사와 직접 교류하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정훈 교수도 "오늘날 모든 불임 부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시험관 아기의 효시를 만든 분"이라며 "이런 성과 때문에 심각한 남성 불임과 자궁내막증, 염색체 이상에 의한 유산 등 다양한 불임 상태에서도 임신 성공률을 50%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