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민철은 40대쯤으로 말이 없는 사내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김동수와 서너번 만났지만 한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날 저녁, 인사동의 한정식 식당에서 만난 유민철이 눈을 가늘게 뜨고 김동수를 보았다. 주위는 손님들로 소란했는데 중국 관광객이 많았다.

    「뭐, 좋은 일 있는거요?」
    백반과 막걸리를 시킨 유민철이 먼저 물었으므로 김동수는 부담이 적어졌다.

    김동수의 만나자는 연락을 받자 유민철은 두말 않고 시간과 장소를 정한 것이다.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눈치를 챈 것 같다.

    심호흡을 한 김동수가 말했다.
    「제가 정보를 빼냈어요. 그러니까 이번 일은 저하고 유선생님하고 둘이서만 진행하는 겁니다.」
    「어허.」

    유민철의 긴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김형은 좀 빠르신데.」
    「뭐가 말씀입니까?」
    「진도가 빠르다고 했습니다.」

    눈만 껌벅이는 김동수에게 유민철이 말을 잇는다.
    「내가 뉴스타 상사하고 4년째인데 영업사원들은 대개 1년쯤 지나서 딴 구멍을 파더라구. 그러다가 서너달 후에는 들통이 나서 짤리던데. 거기, 영업부에 2년 이상 된 직원이 없죠?」

    맞다. 영업과장 최과장이 1년 4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영업은 사장이 직접 챙기는 터라 영업부 직원은 사장, 최과장에 김동수까지 셋인 셈이다. 거기에다 경리부 둘, 창고 담당인 황씨까지 여섯이다.

    유민철이 김동수의 표정을 보더니 다시 입술 끝을 비틀고 웃는다.
    「나야 불러주시니까 고맙지. 뉴스타 정보가 바로 돈이 아뇨? 자, 그럼 이번 물건이 뭐요?」
    「그건 나중에 말씀 드리기로 하고 유선생님은 5백 내실수 있죠?」
    「아, 물건이 좋으면 1천도 냅니다.」
    「그렇게까진 물건이 안됩니다.」
    「도대체 어떤 물건이요?」

    이맛살을 찌푸린 유민철이 다시 물었지만 김동수는 머리를 저었다. 미리 알려주면 선수를 칠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쪽 대리인은 물론이고 물주(物主)도 돈 더 준다면 두말 않고 거래선을 바꾼다.

    미스박한테서 단단히 주의를 들었으므로 김동수는 말을 잇는다.
    「유선생님은 5백만 준비 하세요. 제가 1천을 낼테니까요.」
    「그럼 1천 5백이군.」
    「이쪽 도매상도 제가 대기시킬 테니까 유선생님은 물건만 넘기시면 됩니다.」
    「어허.」
    하면서 유민철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김동수를 보았다. 그리고는 잇사이로 말한다.
    「입사 석달짜리 사원의 작업 치고는 너무 노련한데. 그거 혹시 최과장하고 합작 사업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리고 전 입사 다섯달 째인데요.」
    「도대체 물건은 뭡니까?」
    「다렌에서 중개인을 만났을 때 보세요. 거기서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유선생님은 구입 안하셔도 됩니다.」
    「철저하군. 아무래도 이상해.」

    쓴웃음을 지은 유민철이 다시 머리를 젓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묻는다.
    「마진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다섯배 정도.」
    「으음.」
    탄성같은 신음을 뱉은 유민철이 눈을 치켜뜨고 다시 묻는다.
    「짐꾼은 몇 명이나 데려가야 됩니까?」
    「유선생님까지 넷이면 됩니다.」

    대박 상품이다. 유민철이 심호흡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