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원이 사장 포함해서 6명이니 소기업이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사장 박한식은 말 할때마다 뉴스타 상사를 중소기업이라고 했다. 1년 매출액 15억의 중소기업.

    작년 경상 이익이 1억 8천에 순이익 7천, 그것도 서류상으로다. 입사 5개월째인 김동수는 3개원간 수습사원으로 월급 90만원씩을 받다가 지난달부터 130만원을 받았다. 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른바 지방대 졸업하고 2년 반을 헤메다가 겨우 취업한 무역회사다. 그동안 택배회사, 매장 점원, 보험회사 영업사원, 자동차 딜러(?)까지 겪었지만 넉달 이상 간 곳이 없다.

    가장 긴 곳이 매장 점원으로 석달 반, 가장 짧은 곳이 택배회사 15일이었다. 뉴스타가 그 중 가장 낫다. 다른 놈들한테 말할 때면 사장 박한식처럼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어이, 김동수.」
    하고 부른 놈은 사장의 처남 오기호. 직책은 경리부장으로 제 2인자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동수가 책상 앞으로 다가서자 오기호가 말했다.
    「네가 인천에 가서 고추를 받아와. 배경필이 알지?」
    「예, 압니다.」
    「배경필이가 오후 5시에 도착해. 너한테 넘겨주라고 할테니까. 7백키로야.」
    「그냥 받아오면 됩니까?」
    「중량 확인하고, 배경필이 일행 아홉놈이 들고 온 양이야. 계산은 내일 내가 할테니까.」

    오후 2시가 되어가고 있다. 서둘러야 되었으므로 김동수는 몸을 돌렸다.

    뉴스타 무역의 거래선은 중국이다.
    중국에서 온갖 것을 다 수입해서 도소매상에게 넘겼는데 수입 금지 품목도 있다.

    중국산 고추는 값이 싸지만 대량 수입은 규제가 심해서 인편으로 들여오고 있다. 배경필은 뉴스타 무역의 인간 콘테이너인 셈이다. 배경필은 필요에 따라 10명에서 20명까지를 동원하여 물품을 날라온다. 그럼 물량도 상당하다.

    김동수가 봉고차를 몰고 인천 국제선 부두에 도착 했을 때는 오후 5시가 조금 못되었다.
    부두 건너편 식당 앞에 차를 주차시킨 김동수가 한시간쯤 기다렸을 때 백미러에 배경필 일행이 보였다. 모두 손수레에 한짐씩 물품을 싣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여자도 둘이나 끼었다.

    차에서 내린 김동수를 보더니 배경필이 쓴웃음을 짓는다.
    「오늘은 쫄따구가 나왔군.」

    배경필은 40대 중반으로 이 짓을 한지 10년도 넘는다고 했다. 그런데 번 돈은 노름으로 다 날린다는 것이다.

    「이봐, 중량 잴 것 없어. 모두 720kg, 창고에 싣고가서 확인해.」
    봉고차에서 저울을 꺼내려는 김동수에게 배경필이 말했다.

    그러더니 일행을 둘러 보았다.
    「자, 그냥 실어. 싣고 저녁 먹으러 가자구.」

    일행은 배경필의 지시에 따라 짐을 차 안에 실었고 김동수도 말리지 않았다. 모두 배용수한테서 일당과 배삯을 받고 일을 해주면서 제 물건도 들고 오는 것이다.

    김동수는 여자 둘이 제각기 짐가방 한 개씩을 따로 챙겨 놓은 것을 보았다. 아마 요즘 잘 나간다는 가짜 한약재일 것이다.

    그때 나이든 여자가 김동수에게 물었다.
    「아저씨, 서울 가시면 우리 좀 태워주시죠.」

    김동수가 머리를 들고 무리 중의 한명인 젊은 여자를 보았다.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여자의 시선과 마주쳤다. 꾹 다문 입술, 또렷한 눈, 김동수가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예, 모시고 가죠.」
    행선지가 어디냐고 묻지도 않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