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 주면 미사일 날아온다                                                     

    지난 8월 하순 북한의 신의주 지역에 큰 홍수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데 이어 지난 주말 북한 적십자회가 남한 적십자사에 쌀과 수해복구 물자의 지원을 요청해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 사회에서는 갑자기 북한에 쌀을 보내자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이른바 ‘보수신문’들까지 북한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북한에 쌀을 넉넉히 보낼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정당들도 경쟁적으로 ‘북한에 쌀을 보내자’로 말하고 있다. 정부도 그러한 여론의 변화에 편승하여 민간단체들이 북한에 쌀을 보내는 것을 허용할 것과 정부차원에서도 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쌀 및 수해복구용 물자들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여론의 동향과 정부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한국인의 냄비 기질’이 확인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서해에서 북한이 어뢰를 쏘아 천안함을 격침시켰다고 분노하고, 천안함 침몰로 떼죽음 당한 우리 해군병사 46명의 영령 앞에서 만행을 저지른 북한을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다짐하고, 북한에 대해 우리의 응징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동해와 서해에서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지가 며칠이나 지났는가?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해 천안함을 침몰시킨 도발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동해와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을 때 북한이 사과하기는커녕 우리를 향해 핵무기 사용까지 운운하며 ‘전쟁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협박한 것에 대해 분통해 한 지가 며칠이나 지났는가? 

    신의주 지역에 물난리가 난 것이나, 북한 적십자회가 수해복구물자지원을 공식요청(그것을 공식요청으로 봐야 할 것인지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해온 것은 어뢰로 천안함을 격침시켜 46명의 해군병사들을 떼죽음시킨 북한에 대한 우리의 분노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밝히고 그에 대한 응징의지를 천명한 우리에 대해 적반하장격 협박을 가한 북한에 대한 우리의 분노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사안이 결코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에 쌀과 수해복구물자들을 보내는 것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려면 그에 앞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공격 때문이었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가 거짓이었다고 천명하고 그런 허위날조 선전을 한데 대해 북한에 정중히 사과해야 할 것이다. 또 이른바 ‘보수신문’들이 북한에 쌀 보내기에 긍정적인 여론형성을 선도하려면 자기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천안함을 격침시킨 북한에 대해 반드시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던 것은 잘못한 일이었다고 천명하고 그런 과오를 범한데 대해 북한에 사과해야 할 것이다. 

    현시점에서 천안함 격침에 대한 북한의 진지한 공식사과 없이 북한에 쌀과 수해복구 물자들을 제공하는 것은 장차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냄비 기질을 확인 하는 부끄러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적 후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 후과란 북한으로부터 어뢰공격보다 더 파괴력이 큰 무력도발을 말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공식 사과가 없는 가운데 우리가 쌀과 수해복구 물자들을 북한에 제공하면, 북한은 ‘역시 남조선 놈들은 배알이 없어’라고 경멸하는 동시에, ‘남조선에 대해 아무리 강력한 타격을 가해도 남조선은 전쟁이 두려워 우리에게 반격을 가하지 못하며, 우리가 수재나 식량난 등의 어려움을 당하면 남조선의 인도주의적 창고로부터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경멸감과 남한을 그들의 비상물자 비축창고정도로 생각하는 자신감은 장차 북한 지배층으로 하여금 수틀리면 대한민국에 대해 어뢰공격보다 더 악랄한 무력도발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러한 충동에 따라 북한이 우리를 향해 가할 무력도발의 하나는 미사일 공격일 가능성이 크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누구에겐가 물질적으로 선의를 베푸는 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에 대해 선의를 가져 주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의의 교환은 정상성이 평균적 수준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오늘날의 남북한 관계는 선의의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현재의 남북한 관계는 마치 노점상과 조직폭력배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노점상으로부터 돈과 물건을 갈취해가는 조직폭력배는 노점상이 주는 돈과 물자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조직폭력배는 노점상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폭력배는 노점상으로부터 돈과 물자를 지속적으로 뜯어가면서도 수틀리면 노점상을 때린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돈과 물자를 주어도 북한은 대한민국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혀 갖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번에 북한의 요구대로 쌀과 수해복구물자를 제공한다 해서 북한이 그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그에 상응하는 선의를 표시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오히려 북한은 그것을 남북화해를 빙자하여 북한의 핵무기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남한으로부터 돈과 물자를 더 뜯어내는 기회로 이용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 관리들 가운데 북한에 쌀과 물자들의 제공함으로써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심한 오산이다. 북한에 쌀과 수해복구물자를 제공하면 남북한 간에 과거 10년 동안 진행되었던 것과 같은 진실성 없는 대화가 재개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대화는 본질적으로 노점상과 깡패의 대화와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그런 가치 없는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남북관계의 경색을 풀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런 진실하지 않은 대화는 하지 않은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대화를 해야 하지만, 그 대화는 반드시 ‘진실한 대화’,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를 초래할 수 있는 대화’여야 한다. 그러한 대화는 북한이 남한에 대해 경멸감을 가지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자기가 경멸하는 자와는 누구도 진정한 화해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상대는 짓밟으면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북한으로부터 경멸당하지 않으려면, 그래서 우리가 북한에 쌀 주고 미사일 맞지 않으려면 이번에 북한에 대해 쉽게 쌀과 수해복구 물자를 주어서는 안 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공개적 사과가 있으면 그런 것들을 제공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대한적십자사가 천명했던 비상식량과 생활용품 등만 제공해야 한다. 그런 것들도 북한이 받아서 수재민들에게 주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하지 않으면 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좀 더 오래 냉정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 주민이 수재와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 하여 동포인 우리가 그것을 방관하는 것은 비인도적이고 반민족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이 동포이면서 동시에 적국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사람들이다.  

    북한 주민들은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으로 귀순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적국민이며, 적국민의 고통극복을 도와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에 대한 적의 공격역량을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그러한 북한 주민의 고통극복을 도와주지 않는 것을 비인도적이고 반민족주의적인 태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의 공격으로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이 인도적이고 민족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북한정권은 수해와 식량난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데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코미디 같은 김정일의 호화판 중국 나들이이나, 거창한 정부수립기념식, 그리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 돈이면 수해복구와 식량난해결을 열 번도 더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해와 식량난으로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방관하는 것을 비인도적이고 반민족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런 비난을 하기에 앞서 북한정권에게 김정일의 중국나들이 비용, 정부수립 기념식 비용, 핵무기·미사일 개발 비용 등을 수해복구와 식량난해결에 사용하라고 촉구해야 할 것이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소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