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부동산 경기 활성화와 건설경기 침체, 이와 관련된 금융계 부실채권 증가를 우려, 강남 3구를 제외한 지역에 대한 DTI규제(총부채상환비율에 따른 대출액 규제. 총소득에서 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금융기관들이 대출금액을 산정할 때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검증하기 위하여 활용하는 개인신용평가시스템과 비슷한 개념)를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나오자 언론들은 ‘연봉 ○○○○면 △△△△△대출 가능’ 등의 제목을 달아가며 보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정책이 알려지자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2~30대 젊은 세대들과 아직 자기 집을 마련하지 못한 서민층들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꿈’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서민들이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 또는 신혼부부들에게 자기 능력으로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한다는 건 이제 현실이 아닌, ‘꿈’에 가깝다. 국민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8월 현재 서울 시내 아파트의 평(3.3㎡)당 평균 가격은 1,713만 원. 99㎡(30평)라면 5억6,529만 원에 달한다. 이는 도시근로자가구월평균소득(4인 가구 기준)인 월 420여만 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11년 이상 지나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며 자녀들을 양육하고, 생활하는 과정에서 버는 돈을 한 푼도 안 쓸 수는 없는 법. 아무리 아끼고 절약해도 절반 이상을 저축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기다 도시근로자가구평균소득이라는 건 말 그대로 평균일 뿐 대졸신입사원이 월 250만 원 이상 벌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내 집 마련이라는 건 웬만큼 ‘좋은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계속남지 않는 이상은 어려워 보인다.

    때문에 대부분의 서민들은 40대 중반이 지나도록 아파트를 포함, 다가구나 연립주택 등에서 전세로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실제 196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이들 중 43.2%가 지금도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는 토지주택연구원의 한 조사결과는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날이 갈수록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8일 <조선일보>가 기획취재 ‘사다리가 사라진다’를 통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41~1945년 사이 출생한 사람들 중 45세 이전에 내 집을 마련한 사람들의 비율은 60.4%였던 반면 1945~1950년 사이 출생한 사람들은 53.8%, 1951~1955년 사이 출생한 사람들은 56.6%, 1956~1960년 사이 출생한 사람들은 54.4%, 1961~1965년 사이 출생한 사람들은 53.8%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들의 연령대를 보면 출생에서부터 성장, 사회생활을 한 시기가 우리 경제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와 궤를 함께 하고 있음에도 내 집 마련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조사에서 집계가 되지 않은 젊은 사람들, 특히 1970년 이후 출생한 사람들의 출생에서부터 성장, 사회생활을 한 시기를 고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970년대 초반 출생한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졸업 시기인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를 강타한 이후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한 것을 시작으로 IT 거품 붕괴, 카드대란, 부동산 광풍, 수출제조업체의 공장 해외이전 등으로 이들의 경제활동은 이전 세대에 비해 질적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좋은 일자리’를 구한 이들 또한 이전 세대와는 달리 진급도 늦고 소득도 눈에 띄게 증가할 기회가 적었다. 1990년대 말 대기업이나 금융계에 취업한 이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부분 과장 직함을 달고 있다. IT 업계나 중소기업에 취업한 이들은 ‘용도폐기’식으로 회사를 나오거나 수평이동만 하면서 비슷한 자리를 전전하고 있다. 일부 창업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고배를 마셨다.

    반면 그 사이 물가는 꾸준히 상승했고 교육비, 주거비, 교통비 등과 같은 필수적인 비용 또한 크게 상승했다. 집값은 서울과 일부 신도시의 경우 10년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상승한 곳이 대부분이다. 강남 일부 지역의 경우에는 3배까지 뛴 곳도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197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 전세를 마련한 뒤 맞벌이 등을 하면서 저축해 어느 정도 종자돈이 모이면 대출을 받아 자기 집을 마련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뛴 집값은 그들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었다. 극히 일부 자기 집을 마련한 이들은 지금 대출금을 갚느라 허리가 휜다고 하소연한다.

    선배들을 보며 포기한 ‘꿈’

    이 같은 바로 윗 선배들의 모습을 본 현재 2030세대들은 아예 자기 집 마련이라는 것 자체를 ‘꿈’으로 여기고 있다. 기획취재를 위해 다양한 학교, 직업의 2030세대를 만나 ‘내 집 마련’에 대해 묻자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라며 “꾸준히 재테크를 하다 대박이 터지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차라리 좋은 차를 사고, 만약에 대비해 그 돈은 투자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2030세대 일부 여성들은 “남자친구에게 자기 집이 있다면 결혼을 승낙할 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맞벌이의 부담도 줄고 ‘집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이런 대답을 한 여성들은 상대 남성에게 뛰어난 경제적 능력을 기대하기 보다는 상대 남성의 부모들이 재력이 있어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2030세대의 대답은 ‘내 집’을 중시하는 윗세대들이 보기에는 ‘짧은 생각’처럼 보일 수 있으나 대학 졸업 후 1년 내에 장기 계약직 또는 정규직을 얻는 비율이 64.2%에 불과한 현실(2005년 한국고용정보연구원 조사결과)을 몸으로 느끼는 세대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실제 최근 일부 매체에서 ‘하우스 푸어’에 대해 이슈화하려 하자 다음 아고라에서 있었던 토론에서도 2030세대와 40대 이상 사이에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토론에서 2030세대들은 ‘집이 주는 투자매력도 떨어졌고, 내가 남들에 비해 높은 연봉을 받아도 내 집 마련은 넘을 수 없는 벽이니까 폭락할 때까지 다른 곳에 투자하며 기다리겠다’는 글을 주로 올렸고, 40대 이상은 ‘그래도 애 낳고 전세 때문에 이리저리 이사 다니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내 집 마련 필수’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토론에 끼어든 한 네티즌의 주장이 ‘내 집 필수론자’들의 입을 막았다. 그는 “부모세대가 집값 폭등시켜서 자식 세대가 집 못 구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DTI 규제 완화, 良藥인가 毒藥인가

    이런 지적에 2030세대들은 물론 토론을 지켜본 많은 네티즌들이 공감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집값이 비싼 곳도 있고 싼 곳도 있었지만 2000년부터는 일명 ‘버블 세븐’이라 불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광풍이 불면서 집값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 거품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은 당시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던 기성세대 그리고 건설업체들이었다. 그들에게 부동산 광풍은 큰 기회였다. 하지만 당시 사회 초년생이거나 학생이었던 젊은 세대, 그리고 비록 낮은 임금이지만 성실하게 저축하며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서민들에게 날이 갈수록 뛰는 집값은 절망만 가져다주었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DTI 규제를 유지한다고 했을 때 많은 서민들과 젊은이들이 이를 환영했다. 그 덕에 비록 저축은행 등 금융계가 PF 대란의 위기를 겪고 있고 건설업체들이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지만 떨어지는 집값과 전세값은 젊은 세대와 서민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경기 진작을 빌미로 DTI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이에 ‘한나라당의 미스터 쓴 소리’라 불리는 이한구 의원은 “DTI 규제 완화는 서민에게 독이 될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한구 의원은 30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굉장히 중요한 제도를 함부로 이렇게 저렇게 해버리고 나면 제도 자체가 주는 여러 가지 의미가 크게 퇴색한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또 DTI 규제 완화의 효과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그는 “(규제완화) 효과가 나타나면 더 큰 걱정이다. 왜냐하면 이게 일종의 서민에게 독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지금 소득이 충분치 않은 사람에게 돈을 쉽게 빌려줘 버리면 그 상환될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빚으로 집을 사는 것을 독려하는 정책’으로 인해 가계경제와 금융권의 동반 부실을 우려했다.

    그는 또한 “만일에 이 정책의 효과가 나온다고 하면 무주택자나 젊은 세대들이 앞으로 주택 살 때 더 비싼 주택을 사야 된다는 그런 전제가 성립되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은 불공정 사회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한구 의원의 지적이 2030세대와 서민들의 입장을 모두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400만 명에 이르는 2030세대들(통계청 인구센서스)과 전체 이상으로 추산되는 1700만 명에 이르는 서민층(기획재정부 추산)들 중 대다수가 ‘내 집 마련’을 ‘꿈’으로만 생각하는 현실, 그렇게 된 이유가 지난 20년 동안의 부동산 광풍 때문이었다는 점을 정부와 여당이 생각한다면 이한구 의원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