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고보면 내 주변에서 진지하게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저택을 나오면서 이동규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주변 친구들 분위기가 대부분 수단껏 군대에 안가는 것이 잘난놈 취급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누가 병역의무 이야기를 꺼낸다면 좀 과장된 표현으로 웃기는 놈 취급을 받았다. 중, 고등학교때 선생님한테서 국가에 대한 자부심, 의무를 교육받은 기억이 없는 대신 비판과 불만을 많이 들은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된 원인중에 하나다.

    그러다 성년이 되자마자 난데없는 국방 의무, 2년간의 결별이라니.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남들 다 가니까 간다는 것으로 2년을 때우기에는 왠지 화가 나고 아쉬운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결정을 하고 나니까 개운하긴 했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기분보다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느낌. 체한 것이 뚫린 것 같다.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섰더니 두시간이 지났는데도 심명하는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규와 시선이 마주치자 웃기까지 한다.

    「야, 나가서 밥부터 먹자.」
    저녁 8시가 되어가고 있었으므로 이동규가 앉지도 않고 심명하에게 말했다.
    「이젠 일 다 끝났어. 이 밤을 너하고 둘이 지낼 수 있는거야.」
    「기대되네.」

    일어선 심명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둘은 호텔 옆의 식당에 들어가 회를 시켰다.
    엊그제 해수욕장이 폐장 되었지만 식당에는 손님이 많았고 바닷가도 활기에 차있다.

    심명하가 유리벽 밖의 백사장을 바라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요즘은 철이 지나도 바닷가에 사람이 많아.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어.」
    「차가 많아져서 그래.」

    이동규가 회가 나오기도 전에 가져온 소주병 마개를 뜯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산골짜기 안까지도 밀고 들어온다구.」
    「길이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그렇구나.」
    건성으로 대답한 이동규가 심명하의 잔에 소주를 채웠다.

    「군대 안간 놈들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이번에는 이동규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더니 심명하의 시선이 부딪쳐왔다.

    그러나 이동규가 모른척 술잔을 들고 말했다.
    「자, 건배. 또 하나의 만남과 이별을 위하여.」
    「너, 이상해졌다.」

    술잔을 든 심명하가 머리를 기울였지만 이동규를 따라 한모금 삼켰다. 그러자 이동규가 웃음 띤 얼굴로 심명하를 보았다.

    「머, 바닷가에 여자하고 오면 시상이 떠오르는 법이지.」
    「시상같은 소리하네.」
    「남자들은 그래. 여자하고 처음 자기 전에는 들뜬다구.」
    「너, 진짜 이상해졌다.」

    쓴웃음을 지은 심명하가 제 손으로 술을 따르면서 말을 잇는다.
    「니가 진즉 이랬다면 나, 너 안만났을거야. 니 이미지하고 전혀 안맞거든.」
    「이미지 좋아허네.」

    다시 술을 삼킨 이동규가 심명하를 똑바로 보았다.
    「니 애인이 작년 겨울에 군대 갔다고 했지? 그러니까 8개월 쯤 되었구나.」

    심명하는 시선만 주었고 이동규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 1년 4개월, 그러니까 16개월이 남았네. 안그래?」
    「......」
    「시간이 금방 가는 것 같지 않어?」

    그때 회가 날라져 왔으므로 이동규는 입을 다물었다. 회와 안주 접시를 벌려놓은 종업원이 사라지자 심명하가 입을 열었다.

    「너, 이야기 요점이 뭔데?」
    「니들이 합의하에 이혼 아니, 헤어졌다지만 니 남친이 갑자기 안쓰럽게 느껴져서 그러는거야.」

    그리고는 이동규가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