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이하 조현오 내정자)의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으로 여야 간의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과연 차명계좌가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어떻게 처리될 지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만에 하나 노 前대통령이나 그 주변인이 연관된 차명계좌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처리될까. 

    ‘차명계좌’와 ‘돈 세탁’ 

    ‘차명계좌’란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어 자금을 관리하는 계좌다. ‘차명계좌’를 갖고 있다는 자체가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해당하는 범죄다. 대포 통장도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나 기업들은 법률 위반을 하면서까지 자금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수입이나 소득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차명계좌’는 자신의 소득이나 자산을 숨겨야 하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자들이 많이 사용한다. 범죄 수익을 관리하거나 주가조작을 하는 데도 자주 사용된다. 

    이 중 정치인과 관련된 ‘차명계좌’는 대부분 ‘불법 정치자금’이나 ‘돈세탁’과 관련돼 있다.
    불법 정치자금은 영수증 등의 근거자료 없이 법정 기부액 이상의 거액을 수수하는 것으로 국책사업이나 대형사업에 개입해 외압을 행사한 대가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받은 돈은 현행 법률 상 문제가 되므로 ‘차명계좌’를 통해 사용하거나 해외로 빼돌린 후 ‘돈세탁’ 과정을 거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행법 상 ‘돈세탁’이란 ‘범죄수익규제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범죄행위’ ‘마약류불법거래방지법 제7조의 규정에 의한 범죄행위’ ‘조세범 처벌법 제3조’ ‘관세법 제270조’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등을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돈세탁’이란 정상적인 금융거래 방식을 통하지 않고, 금융감독기관의 추적을 피하는 불법 금융거래 전반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허위매출전표 작성을 통한 자금 빼돌리기, 허위투자를 통한 지분 배정 및 수익배당, 차명계좌를 통한 분산예치 후 다른 유가증권으로의 전환, 카지노를 통해 환전하는 행위, 조세 피난처를 활용해 다시 국내로 들여오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이런 돈세탁은 얼핏 보면 법률을 잘 준수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적발이 쉽지가 않다. 

    ‘차명계좌’와 조세피난처 

    이번에 조현오 내정자의 발언에 문제가 된 것은 과거 노 前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조세피난처를 활용한 불법 금융거래와 댓가성 금품 수수 등이 드러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노 前대통령의 친인척이 연관된, 조세피난처를 활용한 자금 거래는 과거 재벌들이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위장 인수합병을 할 때 자주 사용했던 방식이라 주목을 끌었다. 

    금융 부티크(맞춤형으로 자금조달, M&A 등 첨단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컨설팅 기업)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돈세탁 방식은 대략 이렇다. 먼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다. 조세피난처는 우리나라나 서방국가들과는 달리 주주명부나 기업의 재무제표 등을 신고할 의무가 없다. 설립자의 이름 또한 가명이 가능하다. 때문에 회사가 누구 것인지 자금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다음 ‘차명계좌’나 친분이 있는 기업을 통해 여기에 투자를 한다.
    페이퍼컴퍼니는 그 자금으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를 만든다. 제2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후 다시 한국으로 자금을 송금해 ‘외국인 기업’을 만든다. 이때 혹시나 적발될 게 우려되면 또 다른 기업을 끌어들여 합작회사를 세운다. 외국인직접투자에 목마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는 등록세, 취득세 면제, 5년 간 소득세 감면 등 각종 세제혜택을 준다. 

    이후 이 ‘외국계 기업’은 자유롭게 활동을 시작한다. 겉으로는 정상적인 투자회사나 기업처럼 활동하지만 실질적인 결과는 거의 없다. 대신 ‘차명계좌’의 주인을 임원이나 고문, 직원으로 ‘채용’해 거액의 임금을 지급한다. ‘차명계좌’의 주인은 떳떳하게 돈을 쓸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번거롭거나 시간이 없을 경우 페이퍼컴퍼니에서 ‘투자명목’으로 국내 금융기관에 직접 자금을 보낼 수도 있고, 국내에 PEF를 만들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차명계좌’의 주인이 지정한 기업에 ‘투자’한 후 취업해 ‘임금’이나 ‘자문료’를 받을 수도 있다. 이때 ‘차명계좌’의 주인은 해당 기업에 일정한 수수료를 지급한다. 

    노무현 차명계좌, 존재할 경우 어찌되나 

    이런 방식으로 불법을 저지를 경우 적발이 매우 어렵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돈세탁 방지’를 위한 각종 협력기구를 만들어 놓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구인 ‘에그몽 그룹(Egmont Group)’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1995년 설립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서방국가 간의 자금추적을 위한 협의기구로 만들어져 풍부한 돈세탁 방지 노하우를 자랑한다. ‘에그몽 그룹’에는 현재 세계 110여 국가의 돈세탁 방지 부서들이 회원으로 가입, 상호공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Korea Financial Intelligence Unit, KoFIU)이 2002년 6월 제10차 ‘에그몽 그룹’ 총회에서 정식가입, 활동하고 있다. 2001년 11월 당시 재정경제부 산하에 설치된 금융정보분석원은 5천만 원 이상의 고액 거래가 있을 경우 금융기관의 보고를 바탕으로 자금 출처가 의심스러운 자와 해당 현금흐름을 추적한다. 

    금융정보분석원은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공중 등 협박목적을 위한 자금조달행위 금지에 관한 법률’ 등을 주요 근거로 활동 중이다. 이들의 활동 범위는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데 ‘금융정보분석원’이 발간한 ‘2008년 자금세탁방지제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탈세 등과 관련해 국세청에 제공한 정보 건수가 2003년에는 25건이었으나 2008년에는 무려 2,215건으로 증가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2009년 10월 OECD의 돈세탁방지기구인 FATF에 정규 회원으로 가입. 활동을 개시했다. 금융정보분석원 측은 이 같은 국제 공조를 통해 조세피난처를 활용한 돈세탁과 차명계좌 거래 등의 적발이 더욱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노무현 차명계좌’의 존재 유무 확인 또한 검찰 등과 함께 금융정보분석원이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분석원이 국제협력기구 등과의 공조를 통해 말레이시아 라부안, 버진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 조세피난처 등에 대해 수사를 하고, 여기에 문제의 차명계좌가 있는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때 ‘차명계좌’가 발견되면 어떤 조치가 가능할까.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노 前대통령 관련 자금일 경우에는 ‘불법정치자금 몰수에 관한 특례법’이 적용될 수 있고, 노 前대통령의 측근에 ‘본인이 모두 한 것’이라고 했을 때는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노 前대통령의 가족 중 누군가가 외압의 댓가로 받은 자금일 경우에는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해 모두 몰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야권과 親盧 그룹은 거액의 은닉 자산을 잃는 것은 물론 향후 정치 행보에서도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된다. 

    이와 반대로 조현오 내정자의 발언이 단순한 추측이나 루머에 근거한 것으로 사실이 아닐 경우 조현오 내정자를 발탁한 청와대와 그를 지지하는 여당이 ‘카더라’ 집단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정치권이 아닌, 대부분의 국민들이 노 前대통령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폄훼하려 했다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는 23일 조현오 내정자 청문회는 여야는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로부터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