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무슨 말이냐?」
    조만수는 이해가 안되는지 머리를 기울이며 물었다.

    「입영 날짜를 받아 놓았다니?」
    「저기, 군대 가려구요.」
    「그럼 미국은?」
    「할아버지. 저, 미국 안갈래요.」

    시선을 내린 이동규의 가슴이 미어졌다.
    군대와 미국. 지금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군대에 꼭 가야만 하겠다는 의욕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미국에 가고 싶지도 않다.

    그때 조만수가 한마디씩 또박또박 물었다.
    「네가 군대를 지원했다고?」
    「예, 할아버지.」
    「왜?」
    「군대 가려구요.」
    「그러니까 왜?」
    하고 조만수가 다그치듯 물었으므로 이동규는 머리를 들었다.

    「남들 다 가니까요.」
    그것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뱉고 나니까 목구멍에 걸린 것이 내려간 것처럼 시원했다.

    조만수는 이제 시선만 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이동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원을 한 후에 아버지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미국으로 오라구요. 군대 갈 필요가 없다구 하데요. 제 친구 하나는 어깨를 탈골시켜서 군대 빠졌어요. 저한테도 5천만원만 쓰면 군대 빠질 수가 있다고 했어요.」
    「......」
    「근데요, 할아버지.」

    이동규가 이제는 조만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할까 상의를 드리려고 온 것이란 말입니다. 할아버지 만나기 전까지도 결정을 못하고 있었거든요.」
    「......」
    「그러다가 지금 결심을 한거란 말입니다.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전 미국 안가고 군대 갈겁니다.」
    「얘, 동규야.」

    조만수가 물기없는 목소리로 부르더니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물끄럼히 이동규를 보았다.
    「할아버지한테 상의하려고 여기 왔다고 했지?」
    「꼭 상의를 한다는 것보다 할아버지를 만나면 결정하는데 뭔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할애비한테 칭찬 받고 싶었냐?」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네요. 말 해놓고 나니 가슴이 시원한걸 보면요.」
    「다음달 12일이 네 입영 날짜구나?」
    「예.」
    「넌 착한 놈이다.」

    머리를 끄덕인 조만수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정직한 놈이기도 하고.」
    「할아버지, 제가 겉으로는 미국 간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안그랬던 것 같습니다.」
    「잘 생각했다.」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조만수가 이동규를 똑바로 보았다.
    「할애비는 네가 자랑스럽다.」
    「할아버지가 안계셨다면 저는 미국으로 도망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이동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텔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을 심명하가 떠오른 것이다.

    「할아버지,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요.」
    「데리고 오너라.」

    조만수가 말하자 이동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어머니부터 난리가 날 것이다. 어머니는 여자 친구라면 다 결혼 상대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