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 ⑧  

     「아니, 왠일이시오?」
    그날 저녁, 나를 본 아카마쓰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가 곧 웃었다. 옆에 선 하루코의 얼굴에도 반가운 기색이 떠올라 있다.

    「자, 어서, 안으로.」
    흑인 집사가 내 모자를 받아들더니 현관 옆의 모자걸이에 건다. 세련된 집안 매너다.

    아카마쓰는 대사관 근처의 독채 양옥에 살고 있었는데 나는 오늘 처음 아카마쓰의 사택을 방문한 셈이다. 물론 이곳까지 안내한 김일국은 길 건너편 담장 옆에서 내가 나올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릴 것이었다.

    응접실로 안내된 나는 아카마쓰와 마주보고 앉았다. 하루코는 차 심부름을 받더니 서둘러 나갔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오후 8시여서 늦은 시간이다.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온 터라 실례다. 나는 바로 용건을 꺼내었다.
    「어제 경찰국에 체포된 조선인 양시우는 독립협회 회원입니다.」

    아카마쓰는 차분한 표정이었고 내가 말을 이었다.
    「김윤정의 정보원 이명삼이란 자가 양시우는 불법체류자이며 조선에서 큰 죄를 저지르고 도망쳐 나왔다고 이곳 경찰국에 밀고를 했습니다.」
    「......」
    「영사님께서 양시우를 구해 주십시오. 이미 영사님이 김윤정의 후원자이시며 정보 자금을 주고 계신 것까지 다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러자 아카마쓰가 이만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럼 그 소문을 없애면 어떤 상황이 되겠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입을 다물었고 아카마쓰의 말이 이어졌다.
    「이공께서 독립협회 사람들한테 그 이야기를 듣고 오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힘을 써 그 자를 석방시키면 이젠 김윤정이나 일본 대사관에서 날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그쯤은 무마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김윤정이 6월에 대리공사가 될 것입니다.」

    불쑥 말한 아카마쓰가 소파에 등을 붙이더니 가라앉은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추천을 했고 본국의 승인도 났지요. 김윤정은 일본국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입니다.」
    「......」
    「양시우는 조선 땅에서 일본인 상인 둘을 죽이고 중국으로 도망쳤다가 여기로 밀항해온 사람이지요. 김윤정은 큰 공을 세운 셈입니다.」

    그러더니 아카마쓰가 길게 숨을 뱉는다.
    「만일 양시우를 구해 내려면 김윤정도 모르게, 그리고 독립협회 회원들도 내가 한 일인지도 모르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그러자 아카마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사람한테 가장 맥 빠지는 일이 무언지 아십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일을 할때지요.」
    「저한테만은 영사님의 진심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저만은 압니다.」
    「제가 손을 쓸테니 지금 길 건너편에서 기다리는 사람한테도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때 때맞춰 하루코가 쟁반에 찻잔을 받쳐 들고 들어섰다.
    나는 그때서야 하루코가 흰 원피스 차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꽃무늬가 찍힌 원피스는 화사했고 하루코의 모습도 환하다.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이곳의 세상은 단순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