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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월남이 패망한지도 2년여, 치화형무소 수감자들은 고된 옥고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자살자도 생겨나고 정신분열증 환자가 늘어났다.
내가 A동, B동을 거쳐 다시 이감되어 온 D동에서 약 10미터 떨어진 특별동에는 여자 정치범 100여 명이 수감되어 있었다. 이 여자수감자 중에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중증환자 한 명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작을 일으켜 고성을 지르다가 울기도 하고, 신짝으로 감방 철문을 쾅쾅 두드리며 악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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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메콩강변 ⓒ 연합뉴스
새벽에 발작을 할때는 사방이 고요해서 더욱 요란하게 들려왔다. 새벽에 발작이 있을 때마다 어떤 여자가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소리가 들리면 이상하게도 정신분열증 환자의 발작이 멈춰지고 조용해졌다. 처음에 나는 그 노랫소리가 어떤 목청 고운 여자 무당의 주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환자의 광란이 그렇게 쉽게 멈출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월남 노래였다. 무슨 노래인지는 몰라도 애수를 띠고 있었다. 마치 소쩍새가 피나게 울면서 구슬을 굴리는 듯한 아름답고 슬픈 노래였다. 그리고 그 여자의 노래에서는 진실무위(眞實無僞)가 느껴졌다. 한번 부르기 시작하면 약 5분간은 계속 되었다. 나는 그 노랫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교교한 달밤에 퉁소의 명인이 부는 퉁소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도취했다. 그리고 옛 분들이 남겨놓은 말씀이 그 노랫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오래 머물 수 있는 집이 아니다. 대지는 만물을 재우는 여인숙과 같으며, 해와 달은 백대(百代)의 과객으로서 오가는 세월 또한 나그네니라. 사람의 일생은 하나의 단풍잎 위에 서려있는 한 방울의 이슬, 물속에 비치는 달보다도 더 무상한 것이다. 금동산 백화가 만발한 계곡에서 꽃을 노래하는 한때의 부귀영화는 곧 무정한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인생 오십 년, 무한한 우주와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실로 순간적인 일장춘몽에 불과한 덧없는 것이다.
덕을 쌓으며 지성을 다하여 바른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한때에 적막하다. 권력세도에 집착하고 이에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인생을 달관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물건 이외의 물건을 보고, 자기가 죽은 후의 몸을 생각한다. 사람다운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 한때의 적막을 느낄지언정, 만고에 처량을 취하지 말지어다.
1977년 8월 13일, 일광욕 장소에서 만난 전 월남군 호반키엣 대령이 노래의 주인공이 17세쯤 되어보이는 맑고 산뜻한 아름다운 처녀 수감자라는사실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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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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