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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 건너 산 넘어. 서울을 떠나 피난길을 떠났던 난민들이 나룻배를 타고 다시 한강을 건너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1950년 10월2일. ⓒ 연합뉴스
1950년 10월 5일 이른 새벽, 제7연대 제1대대는 춘천을 출발하여 38선 북쪽에 있는 말고개로 가서 제2연대 1개대대를 초월하여 화천을 목표로 북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말고개에는 이미 제2연대 병력이 진출해 있으며, 그곳까지는 북한공산군이 한명도 없다는 통보를 제2연대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제7연대 제1대대 장병들은 마음놓고 말고개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7연대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은 부대대장 조현묵 소령에게 장병들이 새벽식사를 끝내는대로 약 1시간 후에, 대대병력을 이끌고 말고개로 도보행군으로 전진해 오라고 지시했다. 대대 작전관과 정보관, 통신장교, 예하 4개 중대의 중대장들, 그리고 작전 및 정보과 사병들을 비롯하여 통신병들, 연락병들, 4개중대의 무전병들 및 중대장 연락병들 등 합계 30여명을 인솔하고 우이동을 출발하여 어둠속에서 춘천-화천가도를 북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제2연대 1개 대대는 말고개를 점령하고 있지 않았다. 북한강 서쪽에서 말고개를 점령하기 위하여 야간진격을한 제2연대 1개대대 의대대장은, 군수계통에서만 근무해 전투경험이 없는 석소령이었다. 육사 5기생인 석소령은 지도를 잘못 판독하여 말고개에서 서남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엉뚱한 고지를 점령하고, 거기가 말고개인줄 알고 상부에 보고한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제7연대 제1대대장 김용배 대대장 일행은 말고개 남방 약4킬로 지점까지 태평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지점에서 넓은 도로는 커브를 그리고, 오른쪽으로 구부러졌다가 다시 북으로 구부러진 다음 북으로 뻗고 있었다.
◆ 적의 기관총구를 막아 선 한 마디, "손들어!"
어둠이 점차 걷혀 날은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대대장 일행이 커브길에 다다랐을 때, 일행들은 “앗!”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날려 그곳을 피하는 돌발행동을 취했다. 북한공산군 기관총이 3~4미터 앞에서 총구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관총에는 실탄이 장전되어 있는 것까지 보였다. 북한공산군 기관총사수와 부사수, 그리고 탄약수들이 그 기관총 호속에서 상체 일부를 노출시킨채 우리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기관총 방아쇠를 당기면서 총구를 좌우로 흔들면, 우리는 모두 삽시간에 쓰러지게 되어 있었다. 이 돌발적인 상황에 몸을 긴급히 피해 살아남으려 하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M2 카빈 소총을 어깨에 멘 채 북한군 기관총구를 피해 몸을 날렸다. 이때 “손들엇!” 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나는 그때서야 어깨에 멘 카빈 소총을 내리면서 북한공산군 기관 총구쪽을 돌아봤다. 김용배 대대장은 적의 기관총구 앞에 떡 버티고서서 우선 손 들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기선을 제압한 다음, 겁에 질린 북한군인들이 손을 번쩍들고 일어날 때 허리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김용배 대대장의 손이 허리의 권총을 뽑으려 함과 동시에 “손들엇!” 했던 것이다.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이것을 엄격히 순서대로 따지자면 이렇다. 대대장의 “손들엇!”소리, 이 소리에 겁에 질려 북한군인들이 일어서면서 두 손을 번쩍 들었고, 그 다음에야 대대장이 허리에서 권총을 빼서 북한군인들 쪽으로 향한 것이다. 그 대담한 용감성과 지혜로운 순발력. 나는“백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도저히 저분을 따라갈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총진지에 있던 북한군인들을 모조리 포로로 잡아 심문해보니, 그 일대에는 북한공산군 1개중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김용배 중령은 제1대대 주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말고개로 전진했다. 말고개를 점령한 제1대대는 신포리 북방에 있는 고지를 공격했다.
북한공산군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은 마치 닭이 머리를 동쪽으로 하고, 주둥이는 남쪽으로 두고 누워있는 형상이었다. 그 닭의 배 부분과 목 부분, 주둥이 밑 부분을 스치며 흐르는 냇물이 사창이에서 흘러내리는 지촌천이다. 지촌천은 닭 주둥이 끝부분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이 닭 주둥이 끝부분을 제3중대가 이날 오후 늦게 점령했다. 제2중대는 여기서 멀리 떨어져있는 신포리 서쪽의 고지를 점령하고, 측방으로부터 아군의 후방으로 북한공산군이 역습해 올 것에 대비했다. 포로의 진술에 의하면 이 일대를 방어하고 있는 북한공산군은 1개여단 병력이며, 닭의 목 부분 고지에 북한군 여단장이 나와서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했다.
◆ '역전의 명수' 김용배 대대장과 고등어 통조림
희미하게 밝아오는 어두운 새벽, 김용배 대대장은 대대본부와 중화기중대, 제1중대를 이끌고 닭 주둥이 끝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제3중대 진지로 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용배 대대장의 도착과 때를 같이하여 북한공산군의 역습에 밀려 제3중대는 닭 주둥이 밑으로 뚝 떨어져 버렸다.
산 밑은 넓은 개활지이며 몸을 의지할만한 엄폐물이 아무것도 없었다. 북한공산군이 여기에 기관총 집중사격을 가하거나 야포와 박격포 포격을 퍼부으면, 우리들 약 500명은 풍비박산이 날 것이었다. 대대참모들과 중대장들은 말고개로 즉시 후퇴해서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며, 계속 여기 머물다가는 전멸당한다고 대대장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김용배 대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제3중대에 방금 빼앗긴 능선을 즉시 재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한편, 권총을 빼들고 제3중대 앞으로 나서면서 북한군을 향하여 권총을 계속 쏘고 있었다. 제3중대 장병들은 대대장을 앞질러 돌격해 들어가 잃었던 진지를 단숨에 재탈환하는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대대장 김용배 중령이 나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제1중대는 즉시 이곳을 출발하여 지촌천을 상류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약 3킬로미터 지점에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90도 각도로 꺾어 북한 공산군이 있는 복고개를 점령한 뒤, 거기서 방향을 다시 오른쪽으로 90도 돌려 능선을 타고 올라가서 제일 높은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바로 북한공산군 여단장이 있다는 고지를 기습 점령하라는 명령이었다.
불과 1개 중대 병력을 데리고, 적군여단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심장부를 기습하여 찌르고 이를 점령하라니 그분의 대담성에 나는 다시한번 혀를 찼다.
북한공산군 진지 앞은 지촌천이 흐르고, 그 앞은 넓게 트인 벌판이다. 지촌천을 건너서 서쪽 벌판에는 북한공산군 진지로부터 약 150미터 떨어져서, 북한군 방어선과 평행선을 그으며 오솔길이 나있다. 이 오솔길을 걸어서 약 3킬로미터 사창이 방향으로 가면 복고개 앞에 다다른다. 거기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적의 진지를 기습하는 것이다.
보통 지휘관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러나 김용배 대대장의 형안(炯眼)은 남달랐다. 고작5∼10미터 앞 밖에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를 이용하면, 적군방어선의 약 150미터 앞을 아군 제1중대가 약 3킬로미터 나가로 질러가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며, 복고개의 적군을 기습하고 적군 여단장이 있는 고지도 기습으로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계(視界) 제로의 상태에서 기습당하는 쪽은 기습해오는 쪽의 병력을 실제보다 10배 이상으로 오판하는 것이 상례이다.
제1중대는 김용배 대대장의 의도대로 빠른 걸음으로 복고개 앞에 갔다. 거기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돌려 지촌천을 건너 전속력으로 복고개에 올라간 다음, 북한공산군을 포로로 잡기도하고 북쪽으로 쫓아버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즉시 북한공산군 여단장이 있는 오른쪽 고지로 방향을 꺾어 허리에 총 격투사격을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그 고지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북한공산군 제26여단장은 황급히 달아났고, 방어진지 안의 북한공산군들은 눈사태 현상을 일으키며 화천방향으로 도망쳤다.
김용배 대대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업는 유례를 보기 힘든 기습 작전이었으며, 멋진 대성공을 거둔 역전(逆轉) 드라마였다.
나는 북한공산군 여단장호 속에서 고등어 통조림을 여러개 노획했다. 원산에서 제조된 것이며 품질이 괜찮았다. 북한에서 당시 생선통조림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때의 식품공업이 남한을 앞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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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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