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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조사단원까지 참여한 2개월간의 조사 끝에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에 의한 공격임이 밝혀지고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음에도 한사코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천안함 발표가 "구역질난다"고 말하는 좌파 지식인까지 있을 정도다. 의심과 냉소는 언제나 있을 수 있으나, 명명백백한 천안함의 진실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의심과 냉소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리가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은 공동선에 관한 공유된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것이 다르다면, 구태여 '억지춘향'처럼 같이 살면서 세금도 내고 병역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겠는가. 근본적인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외국과의 축구경기 때는 '대∼한민국'을 외치며 올림픽 금메달 시상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가슴 뭉클한 느낌을 갖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은 단순사고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존립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안보적 사태다. 목숨을 바친 49명의 장병들도 장삼이사와 같은 개인이 아니라 자유와 번영의 공동체를 지키려했던 수호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로댕이 조각한 '칼레의 시민'을 꼭 빼닮았다. 이 '칼레의 시민'에는 영국의 침략에 맞서 칼레시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했던 6인 의 참담한 고통과 고뇌가 그려져 있는데, 영웅적인 행위를 했으면서도 '슈퍼맨'과 같은 존재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들의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바다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천안함의 용사들도 '칼레의 시민'처럼 마지막 순간 마주해야했던 고통의 심연을 생각하면, 살아있는 우리가 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나라를 위해 고통스럽게 죽어간 용사들의 고귀한 영혼과 명예를 누가 더럽힐 수 있으랴. 우리의 서해바다는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거룩해졌다. 그럼에도 이들의 죽음을 함부로 모독하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천안함이 피로로 파괴되었다느니, 좌초하여 충돌하였다느니, 혹은 미군에 의한 오폭사고라는 괴담이 아직도 떠돌아다니고 있다. 증거가 부족하고 북풍을 위한 공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우리 군 장성들을 '패잔병'으로 낙인찍는 독설도 나오는 상황이다.
다원적인 민주 공동체에서는 누구나 의견을 밝힐 수 있고 공론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 앞에서는 겸손하고 정직해야 한다.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아예 귀를 열지 않으려 한다면 오만과 독선이다. 명백하게 밝혀진 사실과 진실 앞에서도 거짓과 의혹을 말하는 사람들의 본심은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를 싫어할 수도 있고 4대강 개발을 반대할 수도 있으며, 또 세종시 원안 수정에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안보에 관한 진실까지 왜곡한다면 '혹세무민'의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아니겠는가.
다원주의 공동체에서 반대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반대는 특정 정권이나 특정 정책에 대한 반대가 되어야지,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와 안전에 대한 부정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사회에서의 반대는 어디까지나 이른바 '충성스러운 반대', 즉 영어로 표현하면 'loyal opposition'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충성스러움'의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유구한 운명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말한다. 따라서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헌신의 정신없이 '반골(反骨)'로만 살고자 한다면, 그것은 '반대'를 넘어 '반역'일 수밖에 없다. 지금 천안함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단순한 '반대자'가 아니라 '불충(不忠)'을 의미하는 '반역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사회의 심각한 문제는 반대는 풍성하나, '충성스러운 반대'는 결여되어 있고 정권을 반대하는 것과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국가는 있는데 '국가의식'은 없고 시민은 있는데 '시민의식'이 없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공동체인가.
지금은 국가적 위기다. 이번에 순국한 49명의 용사들은 해군이었기 때문에 희생된 것이 아니다. 과거 KAL기 폭파의 피해자인 근로자들도 비행기를 잘못 탔기 때문에 불행을 당한 것이 아니며, 버마에서 테러를 당한 정부의 고위 관리들도 아웅산 묘지에 갔기 때문이 아니다. 또 금강산 관광객인 박왕자씨도 금강산에 갔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북한의 호전성 때문에 죽은 것이다. 호시탐탐 대한민국을 노리는 북한의 호전성을 응징하고자 하는 우리의 각오가 결연하지 않고 국가안보를 위해 한 마음으로 단결하지 못하는 한 그러한 비극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북한과 '불륜관계'에 있는 사람처럼 그들의 테러행위를 두둔하면 그런 비극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이번 천안함의 진실이 0.00001%의 신뢰성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강변하는 지식인에게 북한정권이 특별한 배려라도 할 것이라고 믿는가. 우리 사회의 골수 친북주의자나 종북주의자들의 문제는 북한을 두둔하는 나머지 자신들이 대한민국으로부터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의 실체가 무엇인지 의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 공동체가 튼튼해지려면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이 튼튼해져야 한다. 명백히 밝혀진 진실 앞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의심하며 호전적 집단에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에게 '친북의식'은 있고 '종북의식'은 있을지 모르나, 어떻게 '대한민국인(人)'다운 공동체의식이 있다고 할 것인가. 우리는 이명박 정부 앞에 하나가 될 필요는 없고 한나라당의 선거승리를 위해 하나가 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천안함 용사들의 명예를 바로 세우고 호전적 집단 앞에 대한민국의 안보를 굳건히 하는 일에는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후손들에게 "우리는 어려운 중에서도 하나가 되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