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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46용사를 기리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특히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25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조문행렬은 26일 자정 기준으로 1만492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날씨 상황이 비교적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첫날보다 세배가 넘는 인파가 몰린 점은 천안함 순국장병들에 대한 추모 열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27일은 다행히 비가 그쳐 전날보다 추모객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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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들이 순국장병들의 넋을 기리며 헌화를 하고 있다. ⓒ 김상엽 기자
평일임에도 불구,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분향소를 찾은 점도 눈에 띄었다. 주로 점심 시간을 이용해 방문한 이들이 대다수였으나 일부는 조문을 위해 휴가를 내고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사업장을 운영하는 시민들은 잠시 문을 닫고 조문장을 방문했고 가정 주부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순국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학생들도 조문대열에 동참했다. 대학생을 위주로 '공강' 시간을 틈타 합동분향소를 방문하는 발걸음들이 속속 이어졌다. 일부 직장인들은 일과 시간 중에도 단체로 시간을 내 합동분향소를 찾기도 했다. 전역한 예비역 및 현역 장병들도 질서정연하게 조문장을 방문, 유명을 달리한 동료·선후배들의 넋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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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병대 전우회 서울연합회원들이 고인들을 향해 묵념을 하고 있다. ⓒ 김상엽 기자
◇"이북 아니면 이런 일 저지를 사람없어"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 26일 오후, 바짓 가랑이가 금새 젖어드는 상황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차례차례 방문하는 붉은 인파가 눈에 띄었다. 색깔 때문인지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어떤이들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들을 해병대전우회 서울연합회원들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먼저간 후배 장병들을 생각해서인지 말문을 아낀 채 묵묵히 헌화·묵념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성금(62) 해병대전우회 서울연합회장은 "후배들이 서해바다에서 죽었는데 시신도 다 못찾지 않았느냐"며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같은 경우엔 여야 막론하고 정치 논리보다는 대한민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다같이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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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금 회장이 상주를 대표해 나온 해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 김상엽 기자
이 회장은 "이들은 우리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참살당했다"며 "천안함 사태로 장병들이 순직한 것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북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없다"면서 "국민들이 힘을 모아 정리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오늘은 25개 서울지회장들이 모두 참석했는데 내일부터는 조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울역과 서울광장에서 차량 봉사를 할 것"이라면서 "시민들의 원활한 조문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돕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제대한지 5년 됐다는 한경원(37·여)씨는 "하늘이 알고 우는 것 같고 온 국민을 대신해서 우는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에린다"며 "동생 같은 동료 장병들이 순국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해병대전우회 서대문 지회장을 맡고 있는 이주석(58)씨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군기강을 바로잡고 경계 근무를 더욱 철저히 서야 할 것"이라고 당부한 뒤 "다만 장비들이 너무 낙후 돼 있는 점이 안쓰럽고 후배들의 근무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에 대해 공감하며 이에 대한 개선책이 조속히 나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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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수씨가 "고 장철희 일병이 생전 철도기관사가 꿈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 김상엽 기자
◇"장철희 일병, 철도기관사가 꿈이었다"
일반 시민과 학생들도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순국장병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모를 마친 일부 시민들은 분향소 한켠에 마련된 게시판(조의록)에 순국장병들을 기리는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과 근조 리본을 달며 고인들의 넋을 달랬다.
방송을 보고 일산에서 왔다는 김종철(65)씨는 "아들만 셋이라 남일 같지가 않아서 이곳을 찾았다"며 "이번 참사를 우리 모두의 일로 여기고 군과 국민이 더욱 단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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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용사들의 정신을 잊지않겠다"고 밝힌 박상윤씨. ⓒ 김상엽 기자
대학생인 박상윤(역삼동 거주)씨는 "친구들이 군대에 많이 가 있고, 돌아가신 분들이 다 제 나이 또래이고 해서 찾아왔다"며 "마침 오늘 수업도 없어서 조용히 조문하고 싶어 혼자 왔다"고 밝혔다. 박씨는 TV에서만 지켜보다 막상 현장에 와보니 어떠냐는 질문에 "엄숙한 느낌이 들고 천안함 용사들의 정신을 잊지 않고 모두가 다 가슴에 새겨 이분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성수(22·노량진 거주)씨는 "첫날부터 오고 싶었으나 급한 일이 생겨 오늘 오게 됐다"면서 "솔직히 해군에서 구조에 대한 의지가 더 있었더라면, 시간만 제대로 맞았더라면 장병들이 더 많이 살아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이같은 추모열기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남은 가족들을 더 아프게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며 "가급적이면 이번 사건을 두고 정치라든지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순국한 장병 중 장철희 일병은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신분당선(주)'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했던, 장래 희망이 철도기관사가 꿈인 분이었다"면서 "사고 소식을 듣고 설마 이분이 정말 맞는지 반신반의했었다"고 말했다. 자료를 찾아본 결과 동일 인물임을 알고 허탈함과 안타까움을 느꼈다는 윤씨는 사이버상에서 만난 친구를 잃은 슬픔을 애써 감추며 "이런 일이 다시는 생겨선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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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영정을 향해 묵념을 하고 있는 조문객들. 오른쪽 네번째 탤런트 이재룡씨의 모습도 보인다. ⓒ 김상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