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활용 여부에 대해 "중앙 미드필더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 중"이라며 말문을 아꼈지만 최근 들어 팀의 값진 승리에 일조하고 있는 박지성의 선발 출장은 당연한듯 비쳐졌다. 더욱이 기자회견에 나선 라이언 긱스조차 "박지성이 있기에 맨유가 더욱 다양한 전술을 운용할 수 있다"며 박지성 특유의 공간창출 능력 및 강철체력을 극찬했다.

  • 외신들도 박지성의 선발 출전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박지성이 스타팅 멤버에 합류한다는 가정하에 측면이냐, 중앙이냐를 놓고 고민할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박지성은 스타팅 멤버는 커녕 교체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퍼거슨 감독은 8일(한국시각) 새벽 영국 올드 트라포드에서 열린 2009/201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와 좌우 날개로 발렌시아와 나니를 앞세우고 결장이 예상됐던 루니를 깜짝 기용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이는 마치 2008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박지성이 운동장이 아닌 벤치를 달궈야했던 뼈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박지성을 두고 퍼거슨 감독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박지성을 계속해서 중용할 뜻을 비쳐왔다. 더욱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기까지 8강전과 4강전에서 보여준 박지성의 플레이는 공수 양면에서 맨유의 숨통을 트이게 한 결정적인 기회들을 제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퍼거슨의 '화려한 립서비스'는 짙은 그림자를 예고하고 있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출전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박지성은 교체 명단에서도 빠지는 굴욕을 당하며 울분을 삼켜야 했다.

    당시 박지성은 이에 대배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수개월 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심적 고통이 상당했었음을 토로한 바 있다.

    8일 열린 뮌헨전은 1차전의 패배를 안고 시작한 경기였기에 맨유로선 적지않은 부담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맨유가 승리를 하더라도 큰 점수차로 이겨야 하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퍼거슨 감독은 수비적 강점이 있는 박지성 대신 나니와 발렌시아를 이용한 공격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전반까진 이같은 퍼거슨 감독의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 전반전에만 세 골을 퍼부은 맨유는 루니까지 깜짝 출전하는 총력전을 펼치며 뮌헨의 숨통을 조여나갔다. 그러나 후한 초반 하파엘 다 실바가 퇴장을 당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했다. 양적으로 선수가 한 명 더 많은 상황에 놓인 뮌헨은 거센 반격을 퍼부었고 결국 이비차 올리치와 아르엔 로번에게 두 골을 헌납하며 맨유는 경기에 이기고도 4강 진출에 실패하는 불운을 겪게 됐다.

    반면 뮌헨은 이날 맨유에게 2-3 패배를 당했으나 1차전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뒀던 까닭에 9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결론적으로 퍼거슨 감독의 전략은 실패했다. 박지성의 결장은 '공격력 강화'라는 측면에선 바람직했으나 공수 양면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뮌헨의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한 리베리의 플레이가 후반부터 살아난 점은 박지성의 공백을 더욱 아쉽게 만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