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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음반 1백만장 판매는 우습던(?)시절이 있었다. 김건모,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등 이른바 수퍼스타들의 경우 앨범을 내는 족족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일반인들은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의 앨범 수익을 거둬들였다. 씨디 한장(1만원) 당 4500~5000원의 판매 수익을 가져가는 제작자 역시 3만장만 넘겨도 제작비 1억원을 건질 수 있어 90년대 후반까지 국내 음반 시장은 그야말로 호황 일변도였다. 그러나 지난 2001년을 끝으로 국내 가요계는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소위 잘 나간다는 가수들도 음반판매량 20만장을 넘기기가 힘든 시대가 돼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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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일 앨범 최다 판매로 한국 기네스에 오른 김건모 3집 '잘못된 만남'.
1995년 330만장이 팔려 한국 기네스에 등재된 김건모의 3집 앨범 '잘못된 만남'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가 돼 버렸다. 지난해 음반판매 집계 사이트인 '한터'가 발표한 '2009년 음반 판매고'에 따르면 국내 가수의 단일 음반 중 10장을 넘긴 앨범은 단 2개에 불과했다. 서태지 역시 지난해 3월 발매한 8집의 두 번째 싱글 '아토모스 파트 시크리트'와 4월 재발매한 서태지와 아이들 1집과 2집, 그리고 8집 '아토모스 리마스터링' 앨범 등을 모두 합쳐 22만7천여 장을 판매하는데 그쳤다.
이처럼 양적 팽창을 거듭하던 음반 시장이 '반토막'으로 쪼개진 이유는 음악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이동한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등장한 '스트리밍 서비스'와 불법 음원다운로드, 각종 씨디나 음악사이트에서 MP3를 추출하는 기술들이 네티즌 사이에 공유되며 음반을 사서 듣는 시대가 아닌 음원을 공짜로 다운받아 MP3 플레이어나 휴대폰으로 감상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이같은 시대적 조류에 편승, 소리바다나 벅스뮤직처럼 네티즌이 음원을 무료로 공유하고 다운 받을 수 있도록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음반 시장을 잠식당할 위기에 처한 오프라인 음반업체들은 해당 사이트들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디지털음원 판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음원대행업체와 손을 잡고 '온라인음악'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개정 저작권법, '온라인음악 시장' 태동 물꼬 = 특히 2005년 1월 17일부터 발효된 개정 저작권법으로 인해 가수와 음반제작자들이 음원 전송권을 합법적으로 취득함은 물론 음악 파일이 블로그를 통해 불법 유통되거나 P2P 프로그램 등으로 업로드·다운로드가 무단으로 이뤄지는 행위들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 조치가 내려짐으로써 음성적으로 거래됐던 음원이 비로소 본격적인 시장에 진입하는 물꼬를 트게 됐다.
온라인음악 혹은 디지털음악이라 불리는 음원시장은 크게 벨소리나 통화연결음 등을 휴대폰으로 받는 무선인터넷 시장과 인터넷에서 음원을 다운로드 받는 유선인터넷 시장으로 나뉜다. 2005년 개정 저작권법 발효기점을 전후로 'SK텔레콤 - 멜론', 'KTF - 도시락', 'LG텔레콤 - 뮤직온', 'SK커뮤니케이션즈 - 싸이월드'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같은 디지털 음반을 사고파는 '온라인 장터'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기존 소리바다나 벅스도 전면 유료화 과정을 거치면서 합법적으로 음원을 거래하는 공인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제작자 측에서 음원유통 사이트에 해당 음악 소스를 건네고 이를 소비자가 다운받기까지 다양한 유통과정이 존재, 마진의 상당 부분을 콘텐츠 제작자가 아닌 제공자가 가져간다는 점에 있다. MCP, CP 등 수많은 관리자를 거치고 나면 제작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잘해야 25%에 불과하다는 게 가요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를 바꿔말하면 음원을 유통하는 곳에서 가져가는 수익은 80%에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과거 음반 유통시절 소매점에서 20~30%를 떼고 나머지 절반 가량을 제작사와 가수가 손에 쥐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한 음반 업계 관계자는 "음원시장이 아무리 커진다해도 유통마진으로 나가는 돈이 많다 보니 앨범 제작은 커녕 싱글 판매로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며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비난만 할 수는 없는 현실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불법 다운로드 '병폐'를 어렵사리 진정시킨 음반업계는 이젠 거대 공룡으로 변해버린 음원유통사이트에 치여 소위 '대박'을 치고도 손가락만 빠는 지경에 이른 것.
◇"음원유통 시장 만든 게 누군데…" = 그러나 '온라인 장터'를 운영하는 음원유통업계도 할 말은 있다. 음반시장의 붕괴로 사장 위기에 놓였던 음악 산업을 '디지털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옮기는데 결정적인 공훈을 세운 것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 실제로 음악을 담아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기기는 과거 테이프나 씨디에서 휴대폰, MP3 등 첨단 기기로 갈아탄지 오래다.
1999년 SK텔레콤이 TTL브랜드를 런칭하면서 형성된 '모바일 시장'은 단순 통화기능에 머물러 있던 휴대폰을 신세대 문화상품의 아이콘으로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았고 KTF, LGT 등 경쟁 이동통신사 마저 벨소리나 컬러링을 다운받도록 하는 음악사이트를 개설, 오프라인 음반시장의 하락폭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인터넷시장의 엄청난 양적 팽창을 가져왔다.
휴대폰이라는 새로운 기기를 통해 음원을 판매하고 각종 인터넷사이트에서 스트리밍 및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이동통신사로 대변되는 대기업들이다. 음악을 소비자에게 전파하는 경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시장으로 진화한 지금, 이전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유통과정에 기술력이 동반됐다는 점이다. 과거엔 공장에서 찍어낸 앨범을 소매점에 옮겨놓는 게 전부였다면 지금은 소비자가 음원을 구입하기 위해선 대기업 소유의 휴대폰을 이용하거나 다운로드·스트리밍서비스를 거쳐야 하는 등 첨단 IT기술이 유통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음원유통사이트들은 이같은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다운로드 시스템을 구축, 새로운 음원시장을 개척한 것이 음반제작자가 아닌 이동통신사라는 점에서 현재 구조상 유통마진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폭리'가 아닌 '당연한 결과'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김창환 미디어라인 대표는 "미국 최대의 MP3 음원사이트인 아이튠스는 1곡에 1달러 15센트 정도의 돈을 받고 음원을 팔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처럼 5천원에 몇 천곡을 다운 받도록 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국과 일본 등 문화선진국들은 이미 정당한 가격을 받고 음원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파는 사람이 마음대로 가격을 책정해 수익을 거두고 있다"며 "음악 산업의 발전을 위해선 보다 정당한 가격으로 소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통 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