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겨 요정' 세 명이 흘린 눈물에 관객도 울고 캐스터도 울었다.
26일(한국시각)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 나선 한·일·캐나다의 라이벌 3인방은 저마다 자신의 최고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감격적인 무대를 선보여, 팬들을 열광시켰다.
-
- ▲ 26일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움에서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시상식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건 후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이좋게 금·은·동메달을 나란히 획득한 이들은 공교롭게도 경기 직후 똑같이 눈물을 보여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틱한 모습마저 연출했다.
그러나 이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각기 달랐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150.06을 기록, 총합계 228.56으로 세계신기록을 달성한 김연아는 그동안의 부담감을 모두 극복하고 자신의 연기를 완벽하게 선보였다는 점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도 "태어나 처음으로 경기 이후에 눈물을 흘렸다"고 말할 정도로 김연아는 이번 경기를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막중한 부담감에 시달려왔음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이날 김연아가 흘린 값진 눈물은 보는이로 하여금 대견스러움과 동시에 안쓰러움을 느끼게도 했다.
주먹을 불끈쥐고 환한 미소로 눈물을 흘리는 김연아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SBS방송 캐스터도 감격스러운듯 코를 훌쩍이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앞서 경기를 펼친 김연아가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228.56점이라는 사상 최고 점수를 얻은 것에 부담을 느낀 탓인지 김연아 바로 다음으로 빙판 위에 오른 아사다 마오는, 굳어진 표정을 감추진 못한 채 밀려오는 부담감을 떨쳐버리기 위한 심호흡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장기인 트리플 악셀을 연거푸 성공한 마오는 역시나 연기도중 수차례 실수를 범하며 정신력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심판진의 후한 채점으로 총합계 131.72점을 얻어 국제 대회 참가 사상 처음으로 200점 대를 돌파하는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마오는 지난해 일본 오사카부 가도마시에서 진행된 전일본피겨선수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204.62점을 획득한 바 있다).
-
- ▲ 26일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움에서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시상식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걸고 가장 높은 곳에서 은메달 마오 .동메달 로셰트와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기 직후 카메라가 클로즈업한 마오의 얼굴에는 굵은 눈물 방울이 흘려내렸는데 김연아의 그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해냈다'는 김연아의 표정과는 달리 마오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아쉬움의 눈물을 보인 것.
그러나 마오는 김연아가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탓인지, 이내 밝은 표정을 되찾고 환한 얼굴로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를 표시했다.
하지만 자신의 국제 대회 사상 첫 200점 돌파라는 예상밖의 점수가 공개된 순간에도 마오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을 지어 심기가 몹시 불편함을 내비쳤다.
동메달을 거머쥔 캐나다의 조애니 로셰트는 그야말로 '인간 승리'로 불릴 만한 스포츠 정신을 발휘해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실 피겨스케이팅 쇼트프로그램 경기가 열리기 직전인 22일 새벽 자신의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로셰트는 이번 대회 경기 출전 마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로셰트는 쇼트프로그램 경기에 참가, 비교적 선전을 펼치며 캐나다 선수단을 비롯, 타국 선수들에게도 훈훈한 감동과 도전 의식을 심어주는 '투혼'을 선보였다.
쇼트프로그램 경기에서도 빙판을 나서며 눈물을 흘렸던 로셰트는 이날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혼신의 연기를 선보인 끝에 별다른 실수없이 피날레 동작을 마치자마자, 터져나오는 눈물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트랙을 도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 경기를 바친다는 듯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은 로셰트는 나름대로 자신의 연기에 만족한듯, 희비가 교차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로셰트는 심판진로부터 고른 점수를 받아 131.28점을 기록, 합계 202.64점으로 동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안았다. 어머니의 영전에 메달을 바치겠다는 로셰트의 작은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