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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당의 명칭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김대중·노무현을 대통령의 자리에 앉힐 수 있었던 ‘민주당’은 참패의 쓴잔을 마시고 아마도 한동안 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전직 대통령의 실책을 통감했을 것입니다. 1,100여만 표를 받은 한나라당 후보에 비해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가 얻은 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500만 표라는 엄청난 표차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대선에서 어찌하여 김대중·노무현의 지지 세력이 그토록 참혹하게 패배를 당한 것입니까. 2000년 대통령 김대중이 북에 가서 김정일을 껴안고 6·15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하던 때에는 그 내용은 잘 모르던 일반국민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올 것처럼 착각하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의 ‘햇빛정책’에 큰 기대를 걸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평양에서 돌아오면서 던진 첫 마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나보니 식견 있는 믿을만한 지도자”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에 돈을 가져야 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때 김대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에 돈이 갔다는 문제에 관하여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따내기 위해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우고 농구시합 때에나 듣는 ‘맨 투 맨’ 작전도 구사하여 드디어 그 뜻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후계자로 지목했던 노무현을 16대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에 성공하여 퇴임 후의 신변보호에도 만전을 기할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은 잘못 뽑힌 대통령이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막가파’같기도 했습니다. 한문공부가 없는 사람도 ‘천방지축’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성미가 급해서 정신없이 허둥지둥 날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종작없이 덤비다 국회가 그의 탄핵을 의결한 적도 있었습니다.
60년 혈맹인 미국과의 사이도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미·친북’이 뭐가 나쁘냐며 흥분한 그는 한미군사동맹이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마구 떠들어댔습니다. 인천자유공원에 서있던 6·25의 영웅 맥아더 장군의 동상도 철거될 뻔 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명박은 정권교체의 기수가 되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17대 대통령은 그를 밀어준 1,100만은 돌보지 않고 그를 반대해온 600만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듯 여겨졌습니다. 이러다간 배가 산으로 갑니다. 노무현은 “가진 자에게 고통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명박은 민주적 통일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