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합니다. 처음에 그럴듯하게 시작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별 볼일 없어지면 가치는 그 만큼 추락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엔 가치의 추락을 논할 필요조차 없어지기도 하고요. 출발이 괜찮다가 뒷심이 달려서 과정이 엉망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변질되어서 과정까지 변질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함께 뒤집어지기도 합니다.

    식상한 이야기이지만 처음과 과정이 중요한 만큼 마지막도 중요합니다. 처음이 신선했고 과정도 잘 진행이 되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그 동안 쌓은 것을 허물어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는지요? 결과가 어떻든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 현실 속에서는 결과 없는 과정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메달을 따지 못한 운동선수가 과정 운운한다고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지요? 냉혹한 세상에서 말입니다.

    저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처음이 신선하고 과정이 건강하며 마무리까지 멋지게 끝내는 사람이 참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론의 조명을 받으며 멋지게 등장했다가 잠시 잠깐 후 사라져버리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나름대로 뚝심을 가지고 자리를 지키다가 마지막까지 존경을 받으며 역사의 기록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지도자 복이 없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최근에 샤를 드골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드골은 머리가 좋았던 인물로 사관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역량을 드러냅니다. 불과 27살 밖에 안 된 젊은 장교일 때 이미 상급 장교들이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들어줄 만큼 드골은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드골의 처음 출발부터가 멋진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드골의 과정 역시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포로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와중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 드골입니다. 31살에 실력을 인정받아 생시르 사관학교의 역사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첫 번째 저서도 내는데 [적의 내분]이라는 책입니다. 이런 드골은 페탱 원수의 총애를 받습니다.

    계속되는 과정 역시 최고의 모습입니다. 야전부대의 지휘관으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보였고 국가를 향해 장기 군사전략을 제시하고 그것이 채택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됩니다. 임시 장군을 거쳐 독일 지배 하에서 오히려 국가적인 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뛰어난 외교력으로 몰락한 상태의 프랑스를 대등한 위치로 올려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의 대통령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드골의 마지막 역시 아름답습니다. 첫 번째 회고록을 집필한 후 두 번째 회고록을 집필하려던 중 드골은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드골은 유언을 통해 국장의 모든 형식을 엄격하게 거부하였습니다. 제반 경비를 사비로 지출할 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한 드골의 처신은 그가 얼마나 공과 사를 깔끔하게 구분했으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사욕을 채우지 않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드골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한 프랑스의 대통령으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아니 프랑스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몇 안 되는 역대 대통령 중 한 사람입니다.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멋지게 장식한 드골의 모습이 프랑스인들에게는 자랑거리이겠지만 제게는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혹시 자국에 대해 너무 자학하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드골 같은 인물을 저에게 추천해주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과 과정과 마지막이 멋진 대통령이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