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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가격이 ‘금값’이라 불리며 65.9%까지 급등했던 지난 2008년. 라면‧제과‧제빵 등 주요 밀가루 수요 업체들은 ‘밀가루 가격 인상’을 핑계로 일제히 제품 가격을 올렸다. 그로부터 2년 후. 환율과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으로 밀가루 가격이 다시 안정세를 되찾아 32%(8일 기준, 1kg당 1,090원선) 가량 인하됐다.
밀가루 값이 올라 제품 가격을 올렸다면, 이번엔 가격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 잠자코 모르는 척 있던 관련 업체들은 최근 정부와 농식품부의 압박과 소비자들의 원성에 못 이겨 가격 인하안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관련 업체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바로, 재작년 가격 인상안과 비교해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 올릴 땐 크게, 내릴 땐 적게…인상‧인하 가격 차이 폭 커
먼저, 재작년과 비교해 인하되는 가격의 폭이 현저히 낮다. 가격 인상 폭이 적게는 25%에서 많게는 43%였던 것에 비해, 이번에 발표 된 가격 인하 폭은 대부분 10% 내외다. 2008년 롯데제과의 ‘꼬깔콘’과 크라운-해태제과의 ‘티피’가 43% 올랐었지만, 이번 인하안에 포함 된 롯데제과의 제품들은 4~14%선, 해태제과는 10~12%선이다. 물론, 물가상승률과 인상‧인하폭에 약 2배 가량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다.
- '잘 팔리는 건' 올리고, '안 팔리는 건' 내리고
하지만 문제는 ‘제품 선정’이다. 가격인상에는 주력 제품들을 몰아넣어 큰 이득을 취하고, 가격인하에는 주력 제품들을 쏙 빼내 생색내기에만 바쁘다는 지적이다. ‘초코파이’의 가격을 올렸으면, ‘초코파이’ 가격이 내려야 정상아닌가?
제과업체의 경우 오리온은 ‘베베’, ‘투니스’, ‘와플’의 가격 인하안을 발표했지만, 가격 인상안에 포함되어 있던 주력제품 ‘초코파이’와 ‘닥터유’, ‘눈을감자’는 빠졌다. 롯데제과 역시 ‘또뜨’, ‘고구마의 속마음’, ‘꾸띠앙 치즈감자’, ‘립파이’ 등 총 7개 품목의 가격을 내렸지만, 가격 인상안에 포함되어 있던 ‘꼬깔콘’을 비롯해 주력제품인 ‘엄마손파이’, ‘마가렛트’, ‘빼빼로’ 등은 인하안에서 찾아 볼 수 없다. 크라운-해태제과도 상황은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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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한 마트에서 소비자들이 라면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라면업체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시장 1위 업체인 농심은 총 7개 품목의 가격을 인하했다. 하지만, ‘사발면’이 6.3%, ‘안성탕면’이 7.1% 인하된 것과 비교해 주력제품인 ‘신라면’의 인하폭이 2.7%에 불과하고, ‘짜파게티’와 ‘너구리’는 인하 상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원성을 듣고 있다. 신라면의 경우 지난 2008년 2월 15% 100원을 인상했지만 이번엔 겨우 20원을 인하했다. 한국야쿠르트 역시 ‘팔도맵시면’을 포함한 총 8개 품목에 대해 3.7~7.7%의 가격 인하안을 발표했지만, 용기면 시장점유율 1위인 ‘팔도왕뚜껑’이 제외됐다. 또한, 오뚜기는 ‘열라면’과 ‘진라면’ 등 총 7개 품목의 가격을 내렸지만, 주력제품인 ‘진라면’이 상대적으로 그 할인폭이 적다. 한편, 삼양라면은 조금 나은 상황. ‘수타면’, ‘맛있는 라면’과 함께 주력제품인 ‘삼양라면’ 역시 일제히 6.7%로 가격을 낮췄다.
업체들도 할 말은 있다. 롯데제과는 “과자의 주원료라 할 수 있는 카카오, 팜유, 설탕, 향료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며 “주요 원료 중 소맥분류(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2.3%에 불과해 인하 효과가 미미하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들의 입장도 마찬가지.
이러한 업체들의 변명을 듣고 있자면, 밀가루 값이 올라 원가가 상승했을 때보다 하락한 지금이 오히려 더 힘든 상황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이 모습은 재작년 “밀가루가 주원료”라 소리 높이며 너도나도 일제히 제품 가격을 높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던 때와 너무나도 상반된다. ‘이래도 손해, 저래도 손해’라며 볼멘소리를 하며 말을 바꾸는 업체들의 모습에 소비자들의 불신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