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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검은 색이었다. 보랏빛 강이라는 ‘무라사키(紫川) 강’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모두들 ‘검은 강’이라고 불렀다.
일본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하던 1960년대, 공장 폐수와 각종 생활폐수도 오염된 무라사키강은 일본 큐슈(九州)의 최북단 기타큐슈(北九州) 시의 재앙이었다. 태풍이 잦은 일본의 지역적 특성으로 호우피해도 자주 있었다. 1953년 집중호우 때는 당시 강 하류 일대의 80%가 침수 피해를 봤다. 1968년에는 생물학적산소요규량(BOD)가 약 32ppm에 달하는 등 강은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죽인 하천을 외면했다. 시의 중심부를 흐르는 강을 사람이 찾지 않았다. 스스로 죽인 강을 외면하고 버린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함께 살아가는 자연을 버려둘 수는 없었다.
1987년 일본 건설성이 ‘마이타운 마이리버 정비사업’을 세웠다. 무라사키를 버린 것에 대한 반성이었을까? 기타큐슈 시는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그래서 이듬해인 1988년 ‘지정 하천 제1호’로 선정됐다.
시는 ‘마이타운 마이리버 정비사업’을 기회로 무라사키강을 인구 100만의 도시 기타큐슈의 아이콘으로 살려놓겠다고 결심을 했다.우선 상습침수지역인 하구 2km 구간에 대한 대대적인 유역 정비사업과 함께 도시 재개발사업이 나란히 진행했다. 시청 내에 ‘무라사키 강 주변 개발실’이라는 수평 조직을 만들어 관련 부서의 담당자들을 불러 모았다. 강변 정비가 종합적 사업인 만큼 칸막이 행정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부서마다 논리가 제각각이니 처음에는 만나서 주로 싸우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과 주변을 어떻게 소생시킬 것이냐는 큰 목표를 중심으로 실무자들은 서서히 힘을 합했다. 1988년부터 20년간을 기타큐슈 시장으로 재임했던 스에요시 고이치(末吉興一) 전 시장의 독려가 큰 힘이 됐다. 하류 부분에서 강폭이 좁아져 상습 침수를 일으키던 지역의 강폭을 59m에서 89m로 넓혔다. 유수 능력이 두 배로 늘어났다.
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백화점이나 호텔 등 상업 도심으로, 서쪽은 이 지역 출신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 기념관이나 고쿠라 성 등 문화 도심으로 나눴다. 서쪽 연안은 아예 도로를 없애고 공원을 조성했다. 강의 매력을 되찾아 인간의 삶도 풍성하게 하자는 것이 민관의 기본 목표였다. 정비 구상 단계인 1987년부터 건축가 대학교수 향토사가 언론인 공무원들이 각종 위원회를 구성해 아이디어를 냈다.
민간 자본이 대거 투여됐다. 20여 년에 걸친 무라사키 강 재생작업에 들어간 사업비 중 국가 예산과 현의 보조금은 약 950억 엔이었던 데 비해 민간의 자본은 2650억 엔에 이른다. 시보다 민간인들이 더욱 열심히 죽은 강 살리기에 노력했다. 물 환경관 옆의 크라운 팰리스 고쿠라 호텔은 대지의 3분의 1을 강변 조성사업에 내놓았다. 그러자 기타큐슈 시는 워터프런트에 포함된 용지를 호텔의 앞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용적률을 높여줬다. 행정도 양보하고 민간도 양보하는 ‘아름다운 타협’이었다.
일본의 경우 민관협력을 통한 하천살리기는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97년에 하천법이 개정되어 기존의 이수, 치수 정책에 환경 개념이 도입되고 하천 계획시 주민참가가 원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2003년에는 자연재생추진법이 제정되어 콘크리트화퇴고 오염된 하천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 법제화되었고, 2004년에는 경관법도 제정되었다.
민관이 나란히 손을 잡고 정성을 쏟은 탓에 무라사키강은 되살아났다. 지난 2007년 5월엔 일본 국토교통상으로부터 ‘아름다운 거리 대상’을, 2006년과 2007년에는 미국의 NPO가 우수한 워터프런트 개발사업에 주는 상을 연속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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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라시키 강변의 잘 정돈된 수변 공원 ⓒ 뉴데일리
수변에 자리잡은 고쿠라(小倉) 성을 찾는 관광객도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990년 22만 명 수준이던 것이 2005년에는 47만 명으로 늘었다. 2006년에 시가 1990년과 비교해 실시한 시민모니터 조사결과에 따르면 ‘강의 수질이 깨끗해졌다’가 83%, ‘하류의 경관이 좋아졌다’가 85%, ‘마을에 활기가 생겼다’가 74%에 이르는 등 긍정적인 답변이 나왔다.
이제 90m 강폭 양안에는 강을 배경으로 한 가게나 건축물이 즐비하다. 이벤트용 수변무대와 테라스 형식의 음식점, 강가 노천카페가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강변에서 낚시를 즐기던 한 일본인은 “망둥어와 감성돔이 잘 잡힌다”고 말했다. “강이 살아나자 건물들은 서서히 강을 향해 세워졌습니다. 모든 것이 강으로 통하는 워터프런트가 자연스레 구성된 것입니다.”
기타큐슈시 건축도시국 이케다 가즈히코 도심정비계장은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쉽게 강변에 접근할 수 있도록 경사면을 최대한 줄이고 도로의 턱도 없앴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서를 잇는 10개의 다리엔 각기 ‘불의 다리’ ‘나무의 다리’ 등 자연의 이름을 붙여 행인들에게 최대한 친금함을 주려는 노력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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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라시키강 물환경관 ⓒ 뉴데일리
‘친근한 강’에 대한 배려는 물 환경관에서도 잘 볼 수 있다. 대형 스크린 같은 아크릴 창을 통해 시민 누구든 강물 속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물이 맑은 날은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가 섞여 노는 것도 볼 수 있다. 무라사키 강은 하구 약 2km 구간에서 담수와 해수가 섞여 담수와 바닷물이 섞이는 경계면을 볼 수 있다.
‘창문을 통해 강물 속을 들여다 본다’는 아이디어는 20여 년 전 한 중학생에게서 나왔다. 1988년 기타큐슈 시가 무라사키 강을 어떻게 개발하면 좋을지 시민들에게서 아이디어를 모집했는데 나온 아이디어를 채택한 것이다. 공원 변의 모래톱 광장 역시 당시 초등학생이 낸 아이디어.
물 환경관에는 하천의 수질과 수량을 통합 모니터링해 각종 디지털 데이터로 실시간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또 무라시키강에서 서식하는 각종 어류나 조개류 등이 산 채로 전시되어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환경체험학습도 늘 열린다. “강이 살아나니 도시가 살아났습니다. 이제 2급수인 무라사키강에 은어가 돌아오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해낼 겁니다.”
이케다 계장은 “한국의 4대강 살리기 역시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잊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