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뉴데일리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뉴데일리

    황장엽 씨에게 도끼를 보낸 30대가 징역 10월의 실형 유죄선고를 받았다. 30대면 인생을 반도 안 산 사람이다. 이런 애들이 80대 원로, 전(前) 노동당 이론가, 주체사상의 창안자, 그러면서도 “김정일은 아니지...” 하면서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으로 온 황장엽 씨보다 지가 더 옳고 지가 더 아는 게 많다면서 황장엽 씨에게 모욕과 협박과 폭거를 자행 했다.

    안병직, 이영훈 교수 등의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학술적 관점을 덮어놓고 친일 운운 하면서 종묘공원에 그들의 얼굴을 걸어놓고 찌라시를 살포한 자들 역시 20대들로 알려졌다. 이게 모든 것을 말해준다. 지금 우리 사회를 피곤하게 만드는 자들의 정체는 그런 애송이들이라는 것, 따라서 철저히 경계는 하되, 너무 심리적으로 위축당할 것까지는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그들의 끈질기게 이어가는 배후만은 끝까지 추적해서 “그들이 누구인가?”를 소상하게 파악해 둘 필요는 있다. 어떤 ’전(前) 주사파이자, 지금은 우파인' 한 인사는 ”그들은 1980년대 주사파인 민혁당(民革黨) 잔재“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 때 포섭된 NL계 학생들의 잔재가 현재의 유명한 몇몇 ’악악 고는‘ 정치인 남녀(실명은 밝히지 않는다)들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20대, 30대 ’도끼 특공대‘ ’삐라 특공대‘는 NL의 2000년대 변종인 셈인가? .

    민혁당은 1980년대 중반에 당시 서울 법대생이자 주사파의 창시자, 그리고 오늘의 자유주의 운동의 한 축(軸)인 계간 <시대정신> 이사인 김영환 씨가 만든 지하 친북조직이었다. 그는 이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총체적인 전향을 단행했다. 그 혼자만이 아닌 조직 전체의 전향을. 그러나 일부는 그것을 끝까지 거부하고 지금도 주사파 노릇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지금도 자신들의 3세, 4세를 재생산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2세들은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 ‘사업’을 아주 잘하는 열성적인 중견 ‘일꾼’들로 착실히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사회의 웰빙 보수는 이에 대해 너무 무감각하다. 그들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가 컸다는 자신감의 소산이기도 하고, 반대로, 무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안일과 무지의 소치이기도 할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웰빙 보수만으로는 그들 혁명적 소수 정예 광신도들의 ‘체제 흔들기’를 막아내기엔 역부족, ‘두뇌력(頭腦力) 부족’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공짜로 향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 이래, 미국 독립전쟁, 대한민국 건국노선이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한 죽음의 대가(代價)다. 국립 현충원에 있는 묘비명만 읽어 보아도 그것은 너무나도 애틋하고 절절하게 체감할 수 있는 핏덩이 같은 진실 그 자체다. 해병 준장 여현수 님의 부인이 현충원에 묻히신 그 지아비에게 바친 묘비명을 소개한다.

    다시 만나리라는 소망을 안고

    -해병 준장 여현수 님을 추모하는 아내의 글-

    삼십년을 하루같이 변함 없던 당신
    잡을 수 없었던 안타까움에 가슴 저려 옵니다.
    당신은 말없이 가셨어도
    그 깊은 뜻 저희들이 알기에
    그 뜻 받들어 굳게 살아가려 합니다.
    하루도 쉬임 없이 열심히 사셨으니
    그곳 영원한 안식처에서
    편히 쉬시옵소서
    우리가 다시 만나리라는 소망을 안고
    당신 곁에 가는 날까지
    바르게 살도록 지켜주소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는 ‘도끼’와 ‘찌라시’를 제압할 수 있는, 그보다 몇 배나 더 압도적으로 우세한 심리적 역량-해병 준장 여현수 님의 부인 같은 강하고 올곧고 아름답고 꿋꿋한 기(氣)의 힘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