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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인선 정치부 차장대우 정몽준 한나라당 신임 대표가 취임 첫날 공식일정만 10개를 잡았다고 한다. 6선의원이면서도 거대 여당의 대표라는 주목받는 자리를 맡은 부담이 꽤나 무거웠던 모양이다. 가장 큰 마음의 부담은 아마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갑부 리스트에 오를 정도의 재산이었던 것 같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재벌 출신이란 점이 현 정부의 친(親) 서민행보에 마이너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정 대표는 6·25 전쟁 피란 시절에 찍은 가족사진을 꺼내 보였다. "평범한 가정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임을 보여주기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다.

    흔히 부자들이 정치에서 성공하긴 어렵다고 한다. 정치인들에겐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서민적인 감각'이 중요한데, 서민들과 삶의 방식이 다른 부자들은 그런 감각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회에 백만장자가 많다는 미국에서도 부자의 정계 진출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모금하느라 애쓸 필요도 없이 자신의 돈을 아낌없이 퍼부으면 쉽게 당선될 법도 한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미국 정치반응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02년과 2004년 선거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쓴 후보 10위권 안에 들었던 정치 지망생들은 모두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선거엔 돈만으론 살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 도전은 더욱더 어려웠다. 억만장자인 로스 페로나 스티브 포브스는 유권자들에게 '정치의 새로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백악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미국서 부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록펠러 가문의 넬슨 록펠러 전 부통령도 대통령이 되진 못했다.

    억만장자들이 정치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선 설명이 분분하다. 전문가들은 우선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든다. 부자 정치 지망생들이 절절하게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이 한몸 바쳐 죽도록 일하겠다"고 외쳐도 유권자들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쉽게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도 다른 후보자들에게 하던 것과 다르게 더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댄다. 엄청난 재산을 벌어들이는 동안 세금은 제대로 냈는지, 기부금은 어디에 얼마나 냈는지 따지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격상의 특성도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 부자 정치인들은 대개 "세상 일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 같고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으며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또 부자들은 "늘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았기 때문에 실언을 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라고 한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여러 가지였다. 정치 명문가의 아들인 조지 W 부시는 첫 하원의원 도전 실패 후 투박한 말투와 태도로 서민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깨달은 후 비로소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억만장자인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당선 직후 파티에서 핫도그와 팝콘으로 손님을 대접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

    록펠러 전 부통령은 '정말 고마워(Thanks a million)'란 말 대신 'Thanks a thousand'란 표현을 썼다고 한다. '백만(million)'이란 말이 불러일으키는 백만장자의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록펠러의 전기 작가는 그래도 록펠러가 성공한 정치인으로 기억될 수 있는 건 보통 사람들에 대해 진정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고, 대중도 그에 응답을 보인 덕이라고 했다. 결국 중요한 건 서민적인 태도나 이미지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배려인 것이다.

    큰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보통 사람들의 삶과 꿈과 고민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대의 대중이 기대하는 목표와 비전을 만들 수 있다. 그건 대표뿐 아니라 '웰빙 정당'이란 말을 듣던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