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변희재 미디어워치 발행인 ⓒ 뉴데일리
    ▲ 변희재 미디어워치 발행인 ⓒ 뉴데일리

    기아 타이거즈의 1위 독주 체제가 가속화되자, 좌파 언론들도 크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타계 이후, 기아 타이거즈와 DJ 추모 분위기를 연결시키려는 노력도 엿 보인다. 애초에 프로야구는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 (Screen, Sports, Sex)을 통한 우민화 작업이라고 비판했던 것이 좌파진영이었다. 이중 지역연고를 바탕으로 한 프로야구는 영호남 지역감정까지 조장하는 최악의 우민화 정책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런 좌파진영에서 기아타이거즈의 열풍을 좌파 정치 부활에 활용하려는 담론이 나오고 있으니,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영화권력 역시 좌파 진영이 주도하고 있고, 섹스산업조차도 성해방을 외치는 신좌파의 영향으로 좌파들이 특별히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 어찌보면 전두환 정권의 정책을 좌파들이 그대로 이어받은 형국이다.

    2008년 4월 6일자 프레시안의 기사 <"흥을 잃은 광주"…'脫DJ' 속 '정치 무관심'>에서는 기아 타이거즈 관련 의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아따따. (롯데의) 마해영이는 살려주니까 뻥뻥 잘도 치두마…. 종범이도 기회를 줬으면 뭔가 보여줘야 하는디. 사실 종범이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제. 안 되면 안 되는 거 어니겄소. 사람이 물러날 때를 알아야제. 안 그렇소? 옆 동네에 한화갑 씨가 나와부렀데. 그 양반도 옛날에 디제이 대통령 밑에서 고생한 거 보면 애틋하지만서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아니겄소. 그리고 연고도 없는 데 갑자기 덜컹 나와서 표 달라믄 안 먹히제. 광주 분위기도 많이 변혔소."

    그 순간 장성호 선수가 동점 홈런을 쳐 동점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확 펴진 주인은 박수를 치며 "바로 이거제. 실력이 있어야제. 옛날 명성만 갖고 설치믄 아무도 안 알아준당께"라며 환호를 질렀다.

    그러나 그날 경기는 결국 기아 타이거즈의 패배로 끝이 났다. 계산할 때 풀죽은 표정의 주인은 기자의 상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볼펜을 보더니 "기자 양반. 광주에 왔으면 적어도 '아시아나 에얼라인'이 찍힌 볼펜을 들고 다녀야제. '코리안 에어' 볼펜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무시허요"라고 충고했다>

    2008년도, 이종범에 비유하여 한화갑 세대교체 주장한 프레시안

    2008년 기아는 빈곤한 공격력으로 6위에 머문다. 프레시안 측에서는 부진한 이종범을 한화갑과 비교하여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광주시민의 멘트로 인용한 것이다. 이러한 비관적 분위기는 2009년 4월까지도 이어진다. 오마이뉴스에 야구 기사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김은식 시민기자는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란 책을 발간한다. 이 책은 인동초 김대중과 열악한 재정에도 80년대와 90년대 최강팀으로 군림한 해태 타이거즈를 연결시킨다. 프레시안은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최강이면서도 약자들의 팀이었던' 역설적 팀 해태 타이거즈를 핵심 키워드로, 또 해태와 함께 광주의 눈물을 상징하던 김대중을 부수적 키워드로 삼아 민주화와 군부독재, 경제 선진화와 외환위기라는 모순된 시공간으로 존재했던 8~90년대 한국사회를 차근차근 넘어간다. 따라서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최강팀 해태가 승리한 날 경기장에 너무도 구슬프게 울려퍼지던 <목포의 눈물>이 해태의 응원가가 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김은식의 책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뒤 갑자기 몰락한 해태 타이거즈에 대해, “김대중식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모기업 해태, 전북 연구 쌍방울이 무너지면서 돈이 많은 삼성 라이온즈가 최강으로 올라섰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당시 해태는 재정난에 허덕이면서, 이종범은 일본으로, 임창룡은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는 등 주축 선수들이 이탈했다. 묘하게도 삼성은 2002년, 2005년, 그리고 2006년도에 우승을 차지한다. 김은식의 논리라면 노무현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 정권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2009년 5월부터 기아 타이거즈가 급부상하고 DJ가 타계하면서, 흐름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프레시안의 이종성 객원기자는 <그들은 왜 무등구장에서 '김대중'을 외쳤는가>라는 기사에서 “국장 기간 중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열기와 기아의 독주는 묘한 앙상블을 이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타이거즈는 모두 호남의 상징체. 또한 두 상징체는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우민화 정책으로 평가되는 프로야구 개막을 5공화국의 자충수로 몰고 간 주인공이다”라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더 나아가 <기아 타이거즈 홈피만 '김대중 추모' 올린 이유>라는 기사에서 “호남엔 또 하나의 자부심이 있다. 해태의 뒤를 이은 기아 타이거즈다. 기아는 최근 11연승으로 상승세를 타며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규시즌 우승은 물론, 한국시리즈 V10도 가능할 듯하다. 그래서일까?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기아의 V10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호남 사람 치고 해태와 김대중에 대한 기억 하나씩 없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법도 하다”라며 기아에 대한 응원열기를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분위기와 직접 연결시키기도 했다. 과연 이들의 분석은 맞는 것일까? 스포츠와 정치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논리적 고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우나, 이들의 분석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기아는 굴지의 국내 대기업 현대자동차 소유이다. 재력으로 따지면 삼성과 쌍벽을 이룬다. 애초에 가난한 해태와 인동초 김대중을 비교했다면, 현재의 기아타이거즈는 절대 김대중과 연결지울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김은식 기자의 비판대로라면 기아를 현대자동차 측이 인수야말로 김대중식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산물일 테니 더욱 그렇다. 즉 이들은 기아 타이거즈의 열풍을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한 것과 똑같이 “돈 많은 구단이 승리하는 신자유주의 효과”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아 타이거즈 열풍은 신인과 헐값에 트레이드된 선수들이 주도

    더욱 더 심각한 괴리감은 2009년 기아타이거즈의 열풍을 고액 연봉자들이 주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아 타이거즈의 주역은 LG 트윈스에서 트레이드 된 연봉 5천만원짜리 김상현이다. 김상현은 홈런, 타점에서 선두를 달리며 프로야구 시장의 벼락 스타로 올라섰다. 0.6대의 경이적인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는 기아 타이거즈의 마무리 투수 유동훈의 연봉도 9000만원에 불과하다. 타 팀에서 가장 탐내는 기아 윤석민은 3년 차에 불과하고, 10승대 투수로 올라서 양현종도 2년 차이다. 기아의 국가대표 1번타자 이용규 역시 LG에서 헐값에 트레이드해왔다. 현 팀내 최고 타율을 유지하는 김원섭은 허리부상에 간염으로 시달리며 사투를 벌이는 인간승리형 선수이다. 이종범 역시 은퇴 위기에 몰렸다 재기에 성공하며 40대의 희망으로 등장했고, 메이저리그 출신으로 기아에서 거액을 들여 데려온 최희섭 역시 2년 간 부진으로 연봉이 크게 깎인 채 시즌에 임했다. 조갈량이란 별명을 부여받은 감독 조범현 역시 스타 선수 출신도 아니고 스타 감독도 아니다. 기아 타이거즈는 부자 구단의 부자 선수들이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인들과 버려진 선수들이 주도하는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기아의 팬들 역시 10대 여성층이 크게 늘면서 팬의 세대교체도 이루어지고 있다. 광주구장의 관중석에서는 프랭카드를 들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10대와 20대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기아 구단 역시 이에 고무된 상태이다.

    야구 전문가들은 기아 타이거즈의 급부상을 조범현 감독 부임 이후 유명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꾸준히 젊은 선수들과 무명 선수들을 육성한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이종범조차도 “기라성 같은 소수의 스타급 선수 위주로 우승을 휩쓴 해태 타이거즈와, 탄탄한 팀워크의 기아 타이거즈는 전혀 다른 팀”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기아 타이거즈의 열풍을 호남의 낡은 정치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억지로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나 정략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진정 기아타이거즈의 열풍을 정치와 관련지으려면 더 이상 이름값에만 의존하는 낡은 김대중 세력을 호남의 순순한 젊은 세대로 교체하자고 주장해야하는 게 아닐까?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의 강길모 공동대표는 “문화와 스포츠 영역에서의 좌파들의 공세에 우파진영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기아타이거즈마저 좌파 정치에 이용당하는 현상”이라며 경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