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 
    ▲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 

    1991년 무렵 '북한의 운명'을 주제로 한 세미나와 강연회가 일본 곳곳에서 줄을 이었다. 일본인 한반도 전문가가 동나자 한국에서 북한 전문가들을 긴급 수입할 정도였다. 한국인 강사나 일본인 강사나 한 입으로 '북한이 오늘·이달·올해 그 어느 때 무너져내려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고 했다. 경제 실패에다 잇단 흉년으로 굶어 죽은 사람 시체가 청진·흥남·원산 등 북한 도시 길바닥에 널려 있더라는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그 위로 베를린 장벽 붕괴에서 독일 통일로 콸콸거리며 흘러가던 숨 가쁜 국제 정세가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오늘 북한은 병기고(兵器庫)에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까지 쟁여놓고 핵보유국 대접을 해달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김일성의 나라'에서 '김일성 아들의 나라'를 거쳐 이제 '김일성 아들의 아들 나라'로 가는 대물림 준비가 한창이라지만, 핵(核)에 대한 김씨왕조(金氏王朝)의 집념과 집착은 달라진 게 없다. 이러다간 8000만 민족의 운명을 결딴낼지도 모를 북한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스무네댓살 난 김씨 총각 손에 넘어갈 판이다.

    시절이 수상해서 미국과 중국을 떠다니던 '북한 급변 대비론(對備論)'에 다들 귀가 번쩍했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유고시(有故時) 주변국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미리 의논해보자는 게 '북한 급변 대비론'이다. 미국의 이런 제의를 중국은 단박에 뿌리쳤다고 한다. 사실 엊그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맞는 그의 모습은 중환자와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북한 언론이 줄곧 내보냈던 병색(病色)이 역력한 사진이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쩡했다. '건강이 계속 악화돼 앞으로 1년 정도밖에 더 살 수 없을 것'이라던 일부 미국 언론 보도는 헛짚은 게 분명했다. '북한 급변론'도 20년 전 '북한 붕괴론'처럼 공연한 소동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닭 공장' '돼지 공장'의 운영부터 미사일 공장의 증·감산(增·減産) 여부까지 김 위원장이 직접 결정해야 하는 것이 북한 체제다. 1인 집중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금년 67살의 나이에 기울어가는 건강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은 국민 1백만명이 굶어 죽어도 꿈쩍 않는 나라이면서 김씨(金氏) 한 사람의 생사에 천지가 뒤집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진실의 순간'은 가까워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 7월 27일 미국·중국이 워싱턴에서 경제문제와 전략문제를 놓고 대규모 회의를 열었다. 오바마 대통령 표현을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사이'의 대화 테이블 위에 한반도 문제가 올랐다. 주로 북한 핵 문제가 논의됐겠지만, 이야기가 반드시 그 울타리 안에 갇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부탁해 한반도 문제를 테이블에 올린 게 아니다. 미·중 간 G2 회의는 앞으로 더 자주 열릴 테고, 언젠가 한반도에 밀려올 '진실의 순간'에도 테이블을 마주한 두 나라는 더 낮은 목소리로 더 깊은 대화를 나눌 게 분명하다. 그때 대한민국은 어디쯤 서 있을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들어가 북한에 억류돼 있던 두 여기자를 석방시켜 함께 미국땅을 밟는 모습에 미국 밖에서도 콧날이 시큰한 듯했다. 미국인들은 미국 시민이라는 사실에 더한층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같은 순간 한국 국민은 개성공단에서 북한 당국에 끌려간 후 감감무소식인 대한민국 국민 유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붙잡아간 것인지, 지금 어디에다 가둬두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민족끼리'를 그렇게 외쳐대던 북한이 미국 국민에겐 1등 대우를 하고 대한민국 국민은 3등 취급을 하는 데 분노하지 않고 이런 민족 현실에 비감(悲感)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핵실험 전과(前科)를 과거처럼 어물쩍 넘기진 않을 것이라던 다짐은 어디 가버린 거냐며 미국을 탓할 게 아니다. 자기 국민을 구출하는 일에 원칙과 일관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나라는 드물다. 힘이 곧 정의 대접을 받는 국제관계에서 원칙과 일관성이란 힘 없는 약소국들이 때로 기대보는 허망한 등받이이기 일쑤다. 한반도에 '진실의 순간'이 찾아올 그때도 강대국들 태도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두꺼운 구름이 독일 통일이라는 별을 가려왔다. 우리는 구름이 잠시 흩어지던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통일의 별을 낚아챘다." 18년 동안 서독과 통일 독일의 외무장관으로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외교를 걸머졌던 한스 디트리히 겐셔에게 통일은 거저 떨어진 감이 아니었다. 온몸을 던져 낚아챈 승부의 결과였다. 이 '진실의 순간'을 서독의 반대편에선 어떻게 맞이했을까. "우린 너무 늦었소. 너무 늦으면 운명이 벌을 내리는 법이오."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은 자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듯 하는 호네커 동독 서기장에게 이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진실의 순간'이 한반도로 밀려들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낚아채는 쪽일까 아니면 '우린 너무 늦었소'라는 넋두리를 읊어야 하는 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