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1년 반이 흘렀다. 그사이 한국경제는 수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취임 초기에 몰아닥친 촛불정국과 함께 2008년 상반기가 지나가더니 9월에는 미국의 유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2009년 상반기에는 미세한 회복국면이 가시화되는 와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이 발생했다.

    경제문제는 사회정치적 문제와 씨줄과 날줄로 연결돼 있다. 예를 들면 촛불정국은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수많은 과제들을 좌초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대운하가 물 건너갔고 공기업 민영화 추진도 지지부진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7·4·7’ 공약의 핵심인 고도경제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극렬한 비판 대상이 됐다. ‘세금 줄이기’는 ‘부자를 위한 감세’로, ‘규제완화’는 ‘대기업 편향 정책’으로, ‘법치 세우기’는 ‘민주주의 후퇴’로 폄훼되고 있다. 결국 최근 이명박 정부는 중도강화론과 서민위주 경제정책을 들고 나왔다. 문제는 이런 변화마저 표를 의식한 얄팍하고 급조된 전략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열심히 가정을 위해 일하는 꿀벌같은 가장

    전여옥 한나라당 위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대통령은 ‘열심히 가정을 위해 일하는 꿀벌 같은 가장’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소득을 올리고 이를 토대로 가족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누리면 가장은 자연스럽게 평가와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상황이 좋지 않아 겨우 의식주만 해결되는 정도라면 “큰소리치더니 겨우 이 정도야?”라는 질책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최근 우리 경제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겨우 이 정도야?”가 아니라 “이렇게 어려운 와중에 상당하네요”라는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64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외국자본 500억 달러가 우리나라에서 빠져나갔다. 10월 한 달 동안 빠져나간 외국자본만 250억 달러였다. 외환보유액이 2600억 달러에 달했지만 원·달러 환율이 1600원 근처까지 가던 위기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이 아무리 많다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당시 외국자본의 움직임은 우리 경제를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를 일시에 잠재운 것이 미국과 맺은 3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였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나라와 통화스와프를 성사시키자 환율은 단숨에 하락하기 시작했고 외국자본의 탈출도 줄어들었다. 이를 성사시킨 게 강만수 경제팀이었다.

    사실 지난해 하반기는 우리 경제가 위험했다. 당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우리 경제의 위험도를 신흥시장 국가 중 최하위에 가깝게 평가했다. 이런 어려움을 잠재우고 외환 부문의 안정과 함께 최악의 위기를 피해간 이명박 정부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최근 해외언론은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 기업을 견학하러 오는 해외 경영전문 대학원(MBA) 학생 수가 4000명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다. 한마디로 놀랍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감세정책도 일부에서 ‘부자 감세’라고 폄훼하고 있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측면이 강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10월 발행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보면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동시에 시행한 경우가 하나만 시행한 경우보다 경기부양 효과가 높다. 그리고 하나만 시행하는 경우에도 감세정책이 재정지출 확대정책보다 효과적이었다.

    우리 경제를 보면 소득세를 내는 가계는 대략 전체의 반 정도다. 따라서 감세정책을 실행하면 필연적으로 전체의 절반에 대해서만 세금을 줄이게 되는 것이다. 감세는 그냥 감세다. ‘부자’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다.

    감세에 의해 세금이 줄어 가처분 소득이 늘면 소비가 증가하고, 이는 경제 전체를 끌어올린다. 여유계층의 소비증가 효과가 경제 전체로 퍼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부자 감세’라는 말에 포함된 ‘부자’라는 수식어에는 상황을 고의적으로 왜곡하려는 악의적 의도마저 느껴진다. 

    최근 복지예산이 줄어든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편성한 첫 예산인 2009년도 예산에서 복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9.2퍼센트로 역대 정부 중 최고수준을 기록한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평균 20.8퍼센트였고, ‘참여정부’에서는 평균 27퍼센트까지 증가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또는 ‘대기업 편향’이라 부르는 정책들도 따지고 보면 규제가 주로 대기업 중심으로 시행돼온 데 기인한다. 규제를 푼다고 하면 당연히 가장 많은 규제를 받아온 대기업 부문이 우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해외선 “잘한다” 칭찬…국내선 평가 너무 인색해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산분리 완화가 이명박 정부의 주요 공약이기는 했지만 2009년에 와서야 출자총액제한제도 하나만 해결됐다. 금산분리 완화조치의 핵심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제한을 상향 조정하는 것인데, 이 상한선을 현행 4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늘리는 안이 상정된 후 우여곡절 끝에 9퍼센트로 깎여서 통과됐다. 금산분리가 엄격하다는 미국도 상한선이 15퍼센트다. 은행지주회사의 경우는 개정안이 통과되지도 못했다. 대기업 편향이라는 비판도 상당 부분 과장된 면이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도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5퍼센트로 발표했다. 그런데 이 수치는 OECD 전체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로, 우리 경제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위기가 온 것이 현 정부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위기극복 작업을 아주 잘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를 국가 수장으로 선출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지적도 가능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좀 더 열심히 역할을 하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정책을 실행해야 하는데, 발목 잡히는 일이 많아 안타깝다. 밖에서는 잘한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안에서는 평가가 지나치게 인색하다. 실제로 경제위기 와중에 현 정부는 놀라울 정도로 잘 대응하고 있다. 밖에서는 비바람에 폭풍우가 치는데, 안에서는 가랑비 맞는 정도로 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정부는 서민생활 안정대책과 투자활성화 조치를 연이어 발표하고 서민경제와 기업투자 활성화, 성장동력 확충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실용적 행보가 성공하려면 경제논리를 넘어선 수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경제 살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경제 부문을 포함한 사회 각 부문에서 조바심보다는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